복숭아티와 팥절미셰이크의 유혹

by Heba

지난여름, 지인이 사 준 메가커피 복숭아티는 정말

치명적으로 맛있었다.

입 안 가득 복숭아 향이 퍼지고, 달콤한 기운이 뇌까지

번지는 그 맛.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내 혀를 더 깊게 배신하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컴포즈커피의 ‘팥절미 밀크셰이크’.

고소하고 달콤한 그 녀석도 정말 못 잊을 맛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집.

엄마가 당뇨환자다.

그래서 나도 함께 ‘달콤한 유혹 금지령’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이 메뉴들은 지금까지 몇 번 안 사 마셨다.

하지만 유혹은, 점점 더 교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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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작은 아파트 단지지만, 초·중·고가 기본 4개

이상은 있다.

그래서일까?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달콤한 음료의 마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게다가 같은 브랜드의 카페가 꼭 두 개씩, 사방팔방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심지어 개인 카페까지도 눈에 띄라고 노란색으로 외벽을

칠해 놓았다.

도시 미관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마치 온 동네를 노란 그물망으로 덮어놓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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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컴포즈커피 근처만 가면 팥절미 셰이크가 속삭인다.


“팥절미 있어요.”

“그거 네가 좋아하는 거잖아.”

“팥 듬뿍 올려 줄게.”


겨우 피했다 싶으면, 바로 붙어 있는 메가커피가 기다린다.


“한 잔 하고 가.”

“복숭아티는 엄마도 맛있다고 했잖아. 큰 거 사서 엄마랑

나눠 마셔.”

“오늘도 그냥 갈 거니?”


이런 말들이 끊임없이 귓가에 맴돈다.

머릿속엔 복숭아티가, 그리고 달콤한 팥이 듬뿍 올라간

팥절미가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게 눈으로 보인다.


분명 배가 부르고, 먹고 싶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목구멍이 단 걸 마셔야 한다고 끌어당긴다.


놀랍게도,

이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지나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진다.

욕망이 잦아든다.

그제야 알게 됐다.

이건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몸과 뇌가 협업한 정교한

작전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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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유혹이 생기는 걸까?


1. 설탕은 뇌에게 보상이다.


우리 뇌는 설탕을 ‘보상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단 걸 먹으면 도파민이라는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고,

뇌는 이렇게 말한다.

“나 이거 좋다! 또 해!”


그래서 메가커피나 컴포즈커피 근처만 가도,

우리 뇌는 도파민을 받을 준비를 한다.

“지금쯤 도파민 나올 타이밍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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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파블로프의 복숭아티


복숭아티나 팥절미를 마셨던 장소, 감정, 분위기…

이 모든 요소들이 ‘맛있다’는 기억과 엮여 있다.

그래서 조건반사처럼 뇌가 반응한다.

심지어 배가 부른데도 목구멍이 반응하는 건,

신체적 허기보다 심리적 보상 욕구가 더 강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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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욕구는 지나간다


욕구는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 순간만 참아내면 뇌는 이렇게 반응한다.

“아, 안 주네? 그럼 포기.”


즉,

우리의 뇌는 ‘참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훈련되면 조용해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왜 하필 '목구멍'에서 단 게 당길까?


단 음식을 상상하면 침샘이 반응한다.

침이 고이고, 혀와 목 주변이 반응하며 ‘먹을 준비 완료’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목구멍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만족감의

통로’다.


음식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뇌는 쾌감을 느낀다.

그 느낌을 기억하고, 다시 갈구하는 것.

그게 바로 ‘목구멍의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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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노란 간판 사이를 지나간다.

복숭아티와 팥절미 셰이크는 여전히 귓가에 속삭인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뇌를 훈련시키는 중이니까.


목구멍은 또 한 번 삼켰다.

유혹이 아닌, 승리감을.

아이스크림.JPG

모임이 있던 날 젤라토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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