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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Mar 28. 2024

공짜로 숙박하면 생기는 일

이스탄불에서 만난 사람들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 공항까지 비행시간은 11시간 35분. 나 혼자 여행이 신나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정신이 없었다. 환전을 하고 유심을 구매하고 공항을 벗어나 현지인이 사는 집으로 가야 했다.


튀르키예 떠나기 한 달 전


네이버 카페 《터키★그리스★이집트》에 가입했다.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고 동행자도 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동행자를 구해서 같이 여행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2013년 4월, 나는 카페에 글을 올렸다.


제목: 5/7 ~ 5/9, 튀르키예 동행 구해요.

저는 5월 7일에 이스탄불에 도착해요.
3일 동안 이스탄불 여행 계획 있으신 분!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 정보도 공유해요.


한국에서 미리 동행자를 구했다. 같이 동행할 사람은 지영(가명) 언니. 카카오 메신저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여행 정보를 공유하다가 지영 언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또 다른 동행자를 구했는데 다 같이 *카우치 서핑으로 숙박하자는 제안이었다.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언니는 카카오 메신저로 건우(가명) 오빠를 초대했다. 우리 셋은 5월 7일, 현지인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카우치 서핑: 카우치 서핑이란 여행자가 잠을 잘 수 있는 소파(Couch)를 찾아다닌다(Surfing)는 뜻이다. 여행자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해 주고 호스트는 여행자와 문화 교류를 할 수 있다.


긴장을 놓을 수 없어


나보다 이틀 정도 일정이 빨랐던 지영 언니와 건우 오빠는 먼저 현지인 집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문자를 보냈다.


나: 언니! 나 공항에 도착했어.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가는 거 맞지?

지영 언니: 응. 맞아. 버스 종점 앞이 집이야. 도착하면 연락해. 나갈게!


오전 7시. 이스탄불 탁심에서 시내버스 타고 종점까지 가야 한다. 종점까지는 40분이 걸린다.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버스 안에는 자리가 널널했다. 캐리어를 들고 탄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두 명의 외국인이 보이기는 했지만 다 배낭 가방이었다. 캐리어가 불편했다. 지금은 불편한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종점으로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 버스 정류장의 노선을 확인했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당시에 이스탄불은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었다. 길거리가 난장판이었다. 길거리에는 튀르키예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고 여자들은 히잡을 쓰고 있었다. 세계테마기행에서 보던 장면이다. 그곳에 지금 내가 있다. 신기했다. 구경하는 동안에 종점에 도착했다.


지영 언니: 안녕. 근데 지금 집주인은 일찍 대학교에 가서 없어.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보니까 반가웠다. 드디어 현지인 집에 도착했다. 거실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건우 오빠가 보였다.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일단 방으로 들어왔다. 언니와 같은 방을 쓴다. 침대는 하나지만 사이즈는 컸다. 짐을 풀고 씻었다. 개운하다. 이제야 긴장이 풀린다. 영어가 서툴러서 길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했다. 한 시간만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오전 11시. 잠깐이지만 푹 잤다. 여행을 하려면 컨디션 조절도 해야 한다. 지영 언니는 더 쉬었다가 움직인다고 해서 나 먼저 나갈 준비를 했다. 신발을 신고 있는데 건우 오빠도 방에서 나온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봤다. 나랑 목적지가 같았다. 여행 첫 동행자는 건우 오빠다.


이스탄불 중심지, 탁심 광장

이스티클랄 거리는 이스탄불의 명동이라고 불린다. 길을 걷다가 길거리 공연을 구경했다. 즉석에서 부르는 노래가 익숙한 듯 아닌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 순간을 즐겼다. 그랜드 바자르로 이동했다.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아치형 돔 지붕이 있는 터키의 특산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카펫, 향신료, 각 종 보석류, 형형색색의 도자기가 있었다. 서유럽 패키지에서 일행이 말했던 모양이 독특하고 예쁜 그릇들이 많았다.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릇이 반짝였다. 고개를 양쪽으로 돌려가며 천천히 구경하는데 갑자기 한국말이 들린다.


"싸요~ 구경하고 가세요~"


순간 다시 뒤돌아 봤다. 호객행위를 하는 거였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나 보다. 정신없이 구경했다. 배꼽시계가 울린다. 첫 끼니다. 튀르키예는 주식이 빵이다. 고등어 케밥은 구운 고등어와 양파, 당근, 양배추 그리고 석류소스와 레몬즙을 바게트 빵에 넣어서 먹는 튀르키예 대표 길거리 음식이다. 한 입 베어 물었다. 비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안 비려서 놀랐다. 레몬즙이 들어간 고등어 살이 부드러웠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없어진 고등어 케밥. 끼니를 1,400원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한 번 더 놀랐다.  


물가 저렴한 나라로 오길 잘했다.


집주인과 행복을 나누는 시간


오후 8시. 나, 지영 언니, 건우 오빠, 메리, 고제. 거실 탁자에 전부 모였다. 우리는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집주인은 메리와 고제. 23살, 같은 대학교에 다니는 동갑내기 친구다. 이들은 다양한 나라의 사람을 만나서 문화 교류를 하고 싶은데 학생이라서 여행할 돈과 시간은 없고, 그래서 카우칭 서핑을 등록했다고 한다. 


내 소개를 마치고 미리 한국에서 준비한 자그마한 선물을 메리와 고제에게 건넸다. 숙박이 무료지만 미리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예의다. 어떤 선물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튀르키예는 이슬람교다. 이슬람은 돼지고기를 금기시하기 때문에 아무거나 가지고 올 수 없었다. 현지 사람들은 뜨거운 차를 즐겨 마신다. 그래서 준비한 커피 믹스. 메리와 고제는 선물을 보고 좋아했다. 다행이다. 내 영어가 서툴러도 그들과 마음은 통했다.


갑자기 탁자 앞에 있는 에페스 맥주를 보고 내 캐리어에 있는 소주팩이 생각났다. 80일 동안 여행하면서 한 번씩 마시려고 챙겨 왔다. 그들에게 무언가 질문하고 싶었다. 나와 달리 건우 오빠는 영어를 잘했다.


어쩌다 보니 내 통역사가 되었다.


나: 건우 오빠! 메리랑 고제도 술 마셔도 되는지 물어봐 줄 수 있어?

건우 오빠: 응. 이슬람교가 아니라서 마실 수 있대.


그러고 보니 메리와 고제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


소맥을 알려주고 싶었다. 컵에 소주를 따르고 그 위에 맥주를 따랐다. 메리와 고제는 한 모금 마시고 두 눈이 동그레 진다. 맛있다고 좋아한다. 기분 탓일까. 분위기 탓일까. 소맥은 평소보다 더 맛있었다. 건우 오빠는 기타를 치며 팝송을 부른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나: 건우 오빠! 한국 연예인 중에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물어봐 줄 수 있어?


피곤했을 법도 한데 어려운 게 아니라며 부탁을 들어줬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메리: 쏘.....오찌....써....업?
나: 아! 소지섭???


한국어로 말한 메리. 나는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통했다. 나도 소지섭을 좋아한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하이 파이브를 했다. 그 당시에 개그콘서트 어느 코너에서 "뿌잉뿌잉" 동작이 유행했다. 뭘 해도 예쁜 23살. 개그 동작도 알려주니 곧 잘 따라 했다. 귀여웠다. 우리는 시간 지나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


그들과 함께 3일 동안 이스탄불 여행지도 가고 맛집도 갔다. 그리고 떠나기 마지막 날 저녁은 직접 로컬 음식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대접했다.


11년이 지난 지금


튀르키예를 떠나기 전에 카우치 서핑은 숙박이 공짜라는 사실이 더 좋았다. 무료보다 더 좋았던 것은 경험이었다. 현지인을 만나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가고, 다 함께 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3일 동안 그들과 함께 지내니 정이 빨리 들었다. 헤어지기 아쉬웠다. 떠나기 전에 우리는 뜨거운 포옹을 했다. 페이스 북으로 그들과 SNS를 교환하고 가끔 잘 지내는지 안부도 물어봤다. 메리와 고제를 만나서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남은 여행 일정을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튀르키예는 멋진 여행지가 많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지보다 그들과 웃고 떠든 추억이 더 그립다.

이스탄불 구시가지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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