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진단명으로 부르면 안 된다.’
‘환자는 질병이 아니고 질병을 가진 사람이다.’
‘전인적 치료를 행하는 의사가 되어라.’
학생일 때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다.
학생 실습으로 첫 환자를 배정받을 때 무섭고 설레며 환자에게 말 한마디 건네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인턴이 되고 전공의가 되면 요령이 쌓이고 임상 지식이 늘어날 때쯤이 되고 그때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다. 그때가 오면 본인에 대한 방어기제 일 수 있겠지만 기계적으로 환자를 보는 시기가 온다. 환자의 진단명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질환의 병태 생리, 역학, 진단, 증상, 치료, 예후가 먼저 생각나고 수술은 무엇을 해야 하고 그 수술에 따른 합병증은 무엇이 있는지 차례대로 수업 슬라이드 넘어가듯 따라 나온다. 그렇게 연상하도록 교육을 받기도 했거니와 그렇게 접근을 해야 일 처리가 빨라지면서 내 몸이 수월하다는 것을 체득하여 잘 알게 된다. 그 단계가 오면 환자들이 불편을 호소해도 그 정도면 다른 환자들이 호소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적당한 처치를 하게 된다.
통증 조절도 마찬가지로 "그냥 그 약 주세요" 혹은 "그냥 그 주사 주세요"하고 쉽게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회진 돌면서 선배의 질문이 쏟아진다.
“환자 배는 만져 봤어? 통증 양상이 어떤데... 통증 완화되는 양상은? 통증 지속시간은?, 수술 후 복막염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
나의 묵묵부답 후엔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네가 환자 주치의 아냐? 환자 머리맡에 환자 이름하고 주치의엔 니 이름이 걸린 거 아냐? 니 이름에 책임은 져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대충 할 수 있어?”
그렇게 혼나고 나면 환자의 사소한 간호사의 노티에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환자에게 가서 확인하고 검진한다. 그렇게 해야 덜 혼나는 것도 있지만 환자와의 관계를 생각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신뢰관계를 쌓는데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서히 체득이 되고 고년차가 되면 환자를 보는 여유가 생긴다. 환자들이 증상을 호소하면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아는 정도가 된다. 그러는 때가 되면 환자가 진단 혹은 질병이 아니라 조금씩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 내가 나와 같은 사람을 치료하는 거지?'라는 깨달음이 온다. 그러고 나면 사소한 증상 호소가 허투루 보이지 않고 사소한 것에서 잘 못된 점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을 서서히 갖추게 된다.
하지만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 단순히 동정심 혹은 환자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접근하라는 말이 아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는 적정한 선이라는 것이 있다. 환자를 질병으로 대하여 너무 멀리해서도 안되고 너무 감정 이입하여 환자와 같이 생각해서도 안된다. 환자를 너무 감정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객관적 관점을 잃게 되고 명확한 판단을 어렵게 한다. 그 선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한번 돌이켜 볼 필요는 있다. 나의 환자들을 보고 수술을 하면서 과연 질병만 치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시간이 좀 지나다 보니 환자에 대해서 잘 알 것 같고 환자들이 같은 수술을 하고 회복하는 게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익숙해지는 것... 익숙함을 넘어서 서서히 권태로워지는 것... 그렇게 넘어가게 되면 처음의 마음을 잊고 흔들리게 되는 게 아닐까 경계가 필요하다.
나는 암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암을 가진 환자, 암을 가진 한 인간을 치료하는 것이다.
항상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