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연명 중단 의향서

by 한언철

연명의료 결정법이 시행 되면서 암환자들에게 말기가 되어 임종이 다가오게 되면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의향서를 작성하기 전에는 DNR (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금지)을 작성하였고 이 경우 거의 임종에 다가와서야 작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본인의 의사를 미리 생각해서 작성할 수 있어서 본인 치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좀 더 확실해 진 것은 의료인으로서 환영할 일이다. 물론 제도적인 복잡함과 부족한 부분은 서서히 보완되어 가면 좋은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외래에서 수술 시행 후 재발로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를 대할 때가 있다. 연명치료 중단 의뢰서 작성을 설명드릴 때면 아직도 너무 힘들다. ‘당신에겐 더 치료가 무의미합니다. 곧 죽음을 맞으실 겁니다. 저도 더 해드릴게 없네요.’ 이런 선언을 환자에게 하는 것 같고 환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말씀을 드리면서도 걱정스럽다. 의사는 질환에 대한 치료에 특화된 전문가로 치료가 의미가 없을 때는 무기력해 질 수 밖에 없고 마치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 나도 환자에게 이런 말을 전하기가 어렵다. 또 한가지는 환자들이 자신의 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볼 시간이 적다는 점이다. 객관적으로 환자의 병은 깊고 어떠한 치료도 의미가 없지만 환자는 어떻게든 생을 이어가고 싶은 열망이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치료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어떤 치료도 하고 싶지 않은 환자도 있을 수 있다. 의사라면 퀴블러 로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에 대해서 잘 알 것이다. 부정, 분노,우울, 인정, 승화... 실제로 환자들에게 이 단계가 꼭 들어 맞지는 않는다. 단계를 뛰어 넘는 사람, 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 거꾸로 나타나는 사람... 사람에 따라 죽음에 대한 자세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환자의 죽음을 대하는 의사의 자세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치료를 조금 더 길게 끌고가는 의사가 있을 것이고 환자의 다양한 면을 고려한 후 이른 치료 중단을 권유하는 의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의사가 가진 그런 죽음에 대한 자세를 환자들에게 은연중에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환자는 지금 병원에 입원하여 삶을 허비하는 것 보다 집에서 삶을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일 수도 있으나 환자가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약이라도 써보고 싶고 어떤 치료라도 받아보고 싶은 생각 말이다. 또 환자 본인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지만 가족들의 생각들도 지나칠 수는 없다. 환자의 의사와 반대되는 가족의 의견들 때문에 환자의 결정도 흔들리는 경우를 흔히 접할 수 있다. 결국 모든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고 그 방향을 어떻게 정할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결정을 지금 나에게 대답을 요구한다면 너무 무섭고 막막할 것 같다.


외래에 수술 후 간전이가 발생하고 고령으로 항암을 시행하지 않기로 하신 환자 분이 계신다. 지금도 피검사를 하면서 외래에서 뵙는 분이다. 최근 들어 간전이가 많이 커지면서 이런 저런 증상이 생기셔서 외래에서 면담하고 자세히 증상이 왜 발생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말씀을 드리고 있다. 그렇게 외래를 몇 번 본 후 사전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설명을 하고 환자에게 동의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하루는 보호자 없이 환자분 혼자 외래로 오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입원해서 보는게 어떠냐는 말을 넌지시 하셨다. 사실 지금 입원하신다고 해서 딱히 병원에서 해줄 것은 없는 상태라 어르신께 조심스럽게 지금 입원하셔도 병원에서 식사하시는 것과 진통제 드리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음을 설명하고 조금 더 집에서 조절해 보시도록 하고 돌려 보냈다. 그렇게 돌려보내고 문득 어르신은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시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나의 생각만을 너무 강요드린건 아닌지... 입원 시켜드리는게 나았던건 아닌지... 아주 짧지도 않지만 길지도 않은 시간 면담을 하여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죽음에 관련된 책을 요즘은 찾아서 보고 있다.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도 언제가는 죽을 테니까 나의 죽음을 준비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환자들의 죽음으로 가는 길에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어차피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면 어떤 길이 있는지 알고 있고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막한건 어쩔 수 없다.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안한 죽음 혹은 좋은 죽음에 대한 환상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집에서 잠든 채 편하게 눈을 감거나 모든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정리된 상황에서 눈을 감는 정도이지 않을까... 익숙한 공간에서의 마지막... 현실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병원에서 눈을 감고 있고 집에서 죽음 맞기는 점점 어려워 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에서 맞이할 수 있는... 환자들이 원하는 좋은 죽음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지만 참으로 복잡한 문제이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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