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과 양성 사이
C와 D 사이...
종양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라면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대략 감이 올 것이다.
C는 진단 코드에서 악성을 뜻하고 D는 양성을 뜻한다.
"선생님, 이거 종양인데 왜 진단명에 D코드가 되나요? C로 해주시면 안 돼요? 보험 들어 놓은 게 있는데 D는 적용이 안된데요. 어떻게 안 되나요?"
복강 내 큰 종양으로 수술하신 환자 분이고 수술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이 퇴원을 했지만 문제는 퇴원 후 보험 청구하면서 발생했다.
아주 큰 종양이긴 했으나 조직검사 상에서 종양의 악성도를 보았을 때 양성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종양이라고 하는 것이 크기도 중요할 수 있으나 세포의 형태학적 모습이나 분화도 및 면역염색을 통한 악성도 분류가 더 중요하다. 아주 작은 암 조직이라도 악성도가 높아서 아주 나쁜 예후를 보이기도 하고 종양의 크기는 아주 크긴 하지만 악성도도 높지 않고 수술만으로도 완치 가능한 종양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종양이 C와 D로 명확하게 나누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물론 D코드로 양성으로 분류되는 종양이지만 행동양식은 명확히 악성처럼 진행하여 재발도 잘하고 전이도 잘하는 종양이 있다. 이 같은 경우는 D코드지만 암 중증 등록을 해드리는 경우도 있다.
"환자 분 종양은 크기가 크긴 하지만 악성으로 보기에는 어려워서 D코드로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좀 잘 써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병원 객관적 검사 결과를 토대로 써드려야 하고 저희가 발행하는 진단서는 공문서로 이걸 저희 마음대로 써드릴 수가 없어요. 임의대로 제가 써드리면 공문서 위조가 되는 것이고요."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명확하게 잘라서 말해야 한다는 것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전공의 때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단서 발생을 했다가 보험회사에 엄청 시달린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한다.
수술하는 외과의사 입장에서는 D코드로 나와서 더 이상의 추가 치료가 없는 지금 상황이 최상일 수 있겠으나 이 환자분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보험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환자에게는 금전적인 문제로 상당히 예민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자 분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C나 D나 뭐 별거 있냐 싶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C와 D 사이의 간극은 상당히 크다.
악성과 양성의 차이...
악성의 수술과 양성의 수술의 차이... 제거해야 할 조직의 범위는 당연히 악성이 더 넓고 깊다.
재발의 가능성도 당연히 악성에서 더 높다.
수술 후에 항암 치료와 같은 추가적인 치료도 병행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간극의 크기 차이인지 최종 조직검사 결과가 양성이라고 전해드리면 낙담하는 환자와 보호자도 있고 반대로 악성이라고 전해드리면 안도의 표정을 지으시는 환자와 보호자도 있으시다.
C와 D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의사와 환자, 환자 보호자 사이의 알지 못하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
외과의사인 나에게는 C이든 D이든 수술을 하는 것은 같고 C이든 D이든 환자를 똑같이 돌봐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저 모두가 잘 회복하시길...
그래도 C는 D가 될 수 없고 D 역시 C가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