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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Aug 17. 2021

외과의사와 손 씻기

흔하디 흔한 일상 하지만 의미있는 일상

수술실 앞에는 수술실에 참여하는 의료진이 손을 씻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의과대학 학생들이 외과 실습을 시작할 때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손 씻기… 스크럽(scrub)이다.

영어 뜻 그대로 손을 소독약으로 문지르는 것이다. 손톱 밑부터 발꿈치 부위까지 손에 있는 지저분한 것들을 씻어낸다.

학생 때는 소독된 딱딱한 솔에 소독약을 묻혀서 손을 문지르고 들어갔었는데 지금은 아예 소독약이 묻혀진 1회용 제품으로 교체가 되어 훨씬 수월하고 덜 아프다.

첫 외과 학생 실습 때 손 씻을 때의 긴장감이란… 혹여나 실수나 할까 혹여나 수술에 누가 될까 손을 구석구석 배운 대로 꼼꼼히 씻었던 기억이 난다.

최소 2분 이상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다.  

씻고 나면 그 손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되기에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손을 들고 물이 아래쪽으로 흘러내리게 한 다음 수술실에 들어간다.

나는 이제껏 수술실 앞에서 몇 번이나 손을 씻었을까?

아마도 셀 수는 없을 것 같다. 많을 때는 하루에 10번 이상도 스크럽을 했던 것 같다.

떼려야 땔 수 없는 외과의사와 손 씻기…

손을 문지르는 2분이라는 시간은 실제로 꽤 긴 시간이다.

2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가장 많은 생각은 수술을 앞두고 있어 수술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의 암이 있는 위치, 특이점, 조심해야 할 것들… 오늘은 어디를 박리할 때 조심해야지… 거기서 문제가 안 생기게 해야지… 만약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술이 잘 되어야 할 텐데… 그런 생각들이 주로 떠오르는 것 같다.

물론 아무런 생각이 없을 때도 있다.

이제 손 씻기는 일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앞에 서서 손을 씻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끝내고 수술실 문 앞에 손을 들고 서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아주 간단해서 부담이 없는 수술일 경우에는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들어가면 어떤 노래가 나올려나… 오늘 수술 끝나고 일정이 뭐가 있지? 와 같은 수술과 관련 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수술 전에 손 씻기는 나에겐 바람을 담은 의식과 같은 면이 강하게 남아있다.

수술대 앞에서 서기 전 환자에게 칼을 대기 전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다 잡은 다음에 들어가는 의식…

그래서 손을 조금 더 깨끗이 씻으려고 노력한다. 환자에게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언제나 변함없이 수술 시작 전에는 손을 씻고 들어간다.

마음이 가벼울 때도 마음이 무거울 때도 있다. 아주 간단한 수술일 때도 아주 복잡한 수술일 때도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손 씻기이다.

손을 씻고 있으면 환자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주문을 외우고 있는 듯하다.

내가 손을 씻고 최대한 깨끗한 상태에서 수술하듯 환자의 수술도 깨끗하게 이루어지게 해 주시길…


별 것 아닌 손 씻기이지만 수술의 시작을 알려주며 지저분한 것을 떨춰내고 깨끗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의미…

별 것 아닌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니 환자에게 선한 영향이 미치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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