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과거를 이용하기로 했다.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법

by 도영

죽기 위해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올해, 나는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묶여있는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죽기 위해 이뤄야 할 것들이 많기에, 그것을 하지 못하게 나를 붙잡던 것. 내가 우울해지게 만드는 것들, 바로 ‘과거’였다. 나는 과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이젠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늦은 상태에서 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반복될 뿐이었다. 나는 과거에 붙잡혀 미래를 외면하고 현재를 버려두고 있었다. 코스믹 호러의 대가가 되겠다는 큰 꿈을 다시 꺼내면서도 나는 ‘여전히 과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에 잠겨 쉽게 현재를 만들어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고, 매번 반복하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인데 내가 이것도 계속 지속할 수 있을까? 과거에 묶여 두려워했다. 살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두려웠다. 내가 죽을까 봐, 언젠가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죽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라면? 어차피 끝은 ‘죽음’인데, 무엇이 두려운가? 정신과에 꾸준히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고, 애인도 만나면서 점차 그들에게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 졌고, 나를 보면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어차피 영원한 것은 없으니, 이왕이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나쯤은 두고 싶었다. 그게 바로 나만의 글, ‘코스믹 호러’가 담긴 내 글이다. 어차피 죽음에 닿을 건데, 내가 어떻게 살아온 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결국 내가 무언가를 해낸다면, 과거의 실패는 과정이 될 텐데. 실패로 끝난 것들을 다시 시작해서 성공해 내면, ‘과정’이 되는데. 나는 실패를 과정으로 바꿀 수 있다. 아직 내겐 얼마인지는 몰라도 시간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글을 쓰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면, 미래엔 나의 과거가 현재의 추억들로 가득 채워지지 않을까. 그럼 죽음에 닿았을 때, 죽기 위해 살아온 나를 온전히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살기 위해, 죽기 위해서 과거를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병이 있었다. 우울증과 ADHD. 멀쩡히 다니던 고등학교도 나와버려 검정고시로 다시 되돌렸고, 대학도 중간에 도망치듯 나와 여기까지 와있다. 이 과거를 실패가 아닌 ‘과정’으로 고치면 나는 과거를 돌아보고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럼 현재를 감사해하며 살아가고,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나는 내 우울과 ADHD를 고치려고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고, 조금이라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고, 꿈을 이루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중간에 그만두게 되더라도 또 그걸 이어서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과거엔 약도 거르는 날이 많았지만, 이제 약을 거르는 일은 없다. 과거에 미뤄본 적이 있기 때문에 현재에 성실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실패하고 우울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죽기 위해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시 글을 쓰고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과거에 못했기 때문에, 현재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작심삼일이 쌓이고 또 쌓이고 쌓인다. 그럼 먼 미래에 정말 이 작심삼일들이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과거를 계속 이용할 것이다. 과거에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을 다시 몇 번이고 시도해 볼 것이다. 죽기 위해 사는 삶은 두려운 것이 없으니까, 또 실패한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결국 이뤄낸다면 ‘과정’에 불과하니까. 세상은 내가 어떤 식으로 실패했는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성공을 해내면 그때서야 몇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해낸, 더 끈기 있고 멋진 사람으로 칭송할 뿐이다. 가치 없는 실패에 내가 얽매여 있을 필요가 더 있는가?

내가 과거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내가 현재에 과거에 붙잡혀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내 실패는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으니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성공해 내면 그때서야 내 과거가 빛나게 된다. 과거는 힘든 삶을 살아온 나의 ‘서사’가 될 것이다. 결국 그걸 이겨내고 해내고야 만 미래의 나의 서사. 나는 그저 과거를 이용만 하면 된다. 성공할 수 있었던 결과 속 나의 발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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