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저는 어제 죽었고, 내일 환생할 예정입니다.

죽음의 도시, 그 찬란하게 빛바랜 곳에서.

by 도영


낙인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정확히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잘못한 사람은 저렇게 멀쩡히 살아가는데, 왜 나는 '피해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까. 그렇게 어제 나는 죽었고, 눈을 뜨니 새로운 세상에 와있었다. 듣기로 이곳은 '죽음의 도시'라고 불리는 듯했다. 신기한 것은 죽음으로 이곳에 닿은 사람들의 종류가 두 가지로 나뉜 다는 것이고, 그것이 마치 머리 위에 게임 캐릭터 타이틀처럼 떠다녀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The end'와 'Continue', 이렇게 두 가지였는데, 나는 후자였다. 처음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금세 이곳에 대해 인지하고 알아가면서 나는 두 가지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신체적인 죽음에 닿아 다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온전한 종결을 뜻하는 'The end'를, 사회적인 죽음에 닿아 삶으로 돌아갈 수 있으나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Continue'를 붙인다. 신체적 죽음에 닿은 사람들은 아무리 미련이 남더라도 다시 돌아가지 못하지만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렇게 일정 업적을 쌓아 새로이 태어나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받게 되고, 사회적 죽음에 닿은 사람들은 이곳에서의 기억을 잃고 다시 제 삶으로 돌아가나 다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처음 이곳에 닿은 당일, 그러니까 어제 나는 이 이야기들을 듣고 그저 신체적 죽음에 닿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나는 두려워 차마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게 도움을 주는 역할로 배정된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사람은 나와 비슷한 이유로 힘들어했지만 나와는 다르게 신체적 죽음을 택해 이곳에 닿은 사람이었다.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갈등을 하고 있었음에도 그가 안쓰러웠다. 그 또한 내가 안쓰럽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아주 잘 알고 있기에,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어색한 우리의 모습은 그의 첫 질문으로부터 지워져 나갔다.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은지요, 최은지."

"꿈이 있어요?"

"아니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있었는데 지워진 거예요, 태어날 때부터 없었던 거예요?"

무언가 대답하려 입을 열었으나,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꿈이 없었던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하고 싶었던 것들을, 내 꿈을 지워왔을까? 그렇다면 왜? 왜 그랬을까?

"꿈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지워진 것뿐이에요. 그쪽도 그렇죠?"

내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잠시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고는 시선을 다른 곳에 뒀다. 어쩌면 자신이 나를 보고 있어서 내가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계속 고개를 돌린 채 이야기를 듣다가 대답하기 위해 시선을 마주하고는 입을 못 열곤 했으니까.


"나는 그랬어요, 적어도 나는 그랬어요. 어쩌면 여기서의 시간이 더 기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처음엔 나도 그랬어요. '도피처'로 아주 좋은 곳이죠. 신체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여기서 평생을 살 거나 죽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있지만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여기서 길어봤자 4일이에요. 이곳에 그 이상 머물면 우리와 같은 상태가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씩 그렇게 되지 않게 돌려보내는 역할을 해요. 돌아가서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결국 당신 자유지만요. 아직 기회가 있잖아요."

"저는……"

"그래요, 알아요. 죽고 싶죠. 차라리 우리가 더 부럽게 느껴지죠. 근데 왜요? 당신은, 당신은 꿈이 있었는데.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 스스로를 지우지 말아요.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당신이 누구였는지 잊지 말아요."


나는 따라서 그를 바라보지 않고 독백하듯 정면을 바라봤지만 여전히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무언가 가슴에 박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길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원망스럽기도 했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미웠다. 나조차도 미웠다. 나를 미워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들이 아님에도 내가 미웠다. 그리고 문득 나를 보고 이야기하는 이 죽은 사람도 미웠다. 결국 나와 같은 상황으로,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이 사람은 단지 죽기 전에 하지 못한 것들이 죽고 나서 아쉬워져서… 나도 같은 후회를 할까 봐 하는 소리가 아닌가?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이 사람이 더 '나'라는 사람에게 몰입하고 적어도 나는 다른 이야기를 그려나갔으면 해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어쩌면 새 삶을 얻기 위해 범죄자라도 다시 돌려보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막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찰나, 내 속을 읽기라도 한 듯 그 사람이 다시 시선을 내 쪽으로 돌려 입을 열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마주했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 어쩌면 나와 같은 것은 여성이라는 성별 말고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한 상황이 비슷했어도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것 같다고 느꼈으니까.


"신체적 죽음에 닿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으로 환생하기 위해서, 그 업적을 쌓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돌려보낸다고 생각하시나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사회적으로 매장 당해 마땅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오래 고통받으며 살아가거나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때가 있어요. 우리도 그 정도는 가려가면서 적절하게 판단하죠. 허상이라도 그들에겐 우리 같은 사람을 붙여주지 않아요. 신체적으로 죽어 이곳에 도달하는 사람들에겐 당신들 만큼 생생한 '감정'이 없어요. 이입을 막기 위해서요. 이입하게 되면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거든요."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천천히 입을 뗀다. 정확히 내 눈을 바라보고.

"그럼에도 사회적 죽음에 도달한 사람들에겐 왜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게 이곳에서 '감정'을 가지게 하느냐, 처음에도 저는 그게 궁금했어요.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죠. 감정이라는 것은 신체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요. 생각보다 삶은,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충동적'인 일이라는 것을요.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감정과 육체가 살아있으면서 느끼는 것들이 만드는 '충동적인' 일이라는 것을요."

그는 말을 그렇게 끝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4일까지 여기 있을 필요도 없어요. 지금부터 당신이 그 안에라도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그 4일이 지나 강제적으로 돌아갈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보다는 혼자 생각하는 것이, 혼자 이곳을 돌아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을 테니까. 그저 내 판단이에요. 아니라고 생각해도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가볼게요."

여전히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그는 이곳에서 먼 곳으로 가버렸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온전히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어쩌면 조금 틀린 생각을 정확히 짚어주는 것 같았다. 오늘로 2일째. 앞으로 한 이틀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내게 남았다. 이곳에서 돌아가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지금 내가 여기서 하는 생각들이 돌아가면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당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온전히 마주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피해자, 피해자, 피해자, 저 안타까운 사람. 죄를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나에게 굳이 '피해자'라는 것을 붙여 괴롭히는 것일까? 오히려 죄를 지은 가해자를 알려도 모자랄 판에, 피해자가 누군지 사람들이 더 잘 아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 상황들이 나를 살고 싶지 않게 했고, 이 자리에 오도록 만들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워나가고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모든 것들이 너무 버겁게 느껴지고 삶이 너무 미워져서,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내 내면은 들여다봐주지 않는 것 같아서. 나는 펑펑 울었다. 속상한 일이 생긴 아이처럼, 소중한 것들을 잃은 어른처럼. 만약 내가 죽는다면 뉴스 기사에 한 줄이라도 실리긴 할까? 결국 나와 같은 사람들은 아까 만난 그 사람처럼, 곧 죽을 예정인 나처럼 천천히 잊힐까. 차라리 잊히는 것이 행복한 일일까. 나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다가 눈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지워지는 건, 너무 끔찍하지 않아? 나조차도 나를 잊어버리면 그땐 어떡하지? 나는 모든 걸 내가 기억하고 안고 가기 위해 죽고 싶었던 것인데, 죽음에 닿아 나조차도 나를 잊으면 어떡하지?


아까 나와 함께 있던 그 사람,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찾아 무작정 뛰고, 그러다 지쳐서 걷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그렇게 이 도시를 돌아다녔을까, 문득 뒤에서 누군가 나를 따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아가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 사람이다. 나와 같은 것은 성별뿐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 천천히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나와 똑같은 사람. 도피할 곳을 찾고 찾다가 죽음으로 도피하고 싶었던 사람.


"나를 찾았어요? 무슨 이유로 찾은 건지 물어도 될까요? 혼자 있기 싫어서? 아니면 돌아가고 싶어서?"

"……당신은 꿈이 뭐였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거요.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어요. 내 삶을 기록하고 남기는 사람이었어요. 내가 남기는 모든 것들이 잊히지 않길 바랐어요."


하지만 피해자라는 낙인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주는 것은 고통스러웠지.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주는 것을 바라진 않았는데. 내 아픔을 내가 기억하고 가져가기 위해서 죽고 싶었다고 했지. 사람들이 평생을 내 아픔을 기억하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그 사람을 바라봤다.

"돌아가고 싶어요.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갈래요. 충동적으로, 아주 충동적으로 여기 닿게 된 것처럼. 하지만… 오늘 말고요. 내일, 내일 갈래요. 오늘은 좀 더 당신에 대해 듣고 싶어요. 당신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조차도 나를 잊어버리면 내 꿈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질 것이다. 여기서의 시간이 아무리 기뻐도 결국 꿈을 이뤘을 때보다 행복하진 않을 거라고 결론 내렸고 나는 나를 잊지 않기 위해 나를 마주하기로 했다. 이미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잊고 있지 않았던가? 나는 어제 제 손목을 그어냈고, 이 자리에 왔음을 깨달았다. 나는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죽음의 도시라고 불렸지만 그보다는 역시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이름이 어울렸다. 어제 죽은 나는, 내일 환생하기로 했다. 원래 내 삶으로 돌아가는 환생.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는, 충동적인 나에게. 또 다른 충동으로 다시 한번 더 살아가기 위해서.


가만히 그 사람을 마주 보고 옅게 미소를 지었다.

잊지 않을게, 나를. 이곳에서 마주한 것은 잊어버리겠지만 항상 나를, 나 자신을 잊지 않을게. 내 아픔을 딛고 충동적으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살아갈게. 충동적으로, 충동적으로.


To be Continue





단순히 죽음을 숨을 쉬지 않는 상태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대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이 글은 두 가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두 가지 중 한 가지의 죽음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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