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자라고 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유언증서
유언자: 196x 년 08월 xx일 피어난 김 연(金 燃)
주소: 월하광역시 동구 초승동 35-54번지
연락처: 010-XXXX-XXXX
유언내용
1. 월하광역시 동구 초승동 35-21번지에 있는 개인 소유 교회는 국가에 환원한다.
2. 월하은행에 예금된 약 1억 원은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재난민들을 위해 기부한다.
3. 장례식은 치러줄 필요가 없으며, 시신은 화장하여 월하광역시 동구에 있는 바다에 뿌려주기를 원한다.
4. 유언집행자의 지정에 관하여 위 유증의 이행을 위해 유언집행자로 김하은(金下慇, 주소: 은하남도 성하시 해동 수격리 4번지, 주민등록번호: 8XXXXX-XXXXXXX)을 지정한다.
작성일자: 20XX년 12월 25일
유언자 성명: 김 연
(자필로 작성된 유언증서, 이름 옆에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유서
사람들은 종종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자신이 믿는 신을 찾곤 한다. 신이시여, 부디 우리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신을 간절하게 찾으며 그에게 기도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을 떠올리며 나쁜 마음을 접고 선한 마음을 그대로 떠올려 좋은 일을 해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신 아래에서 죄를 짓는 자에게는 신께서 질병이나 재해를 내려 그 사람에게 벌을 내려 고통스럽게 하는데, 대게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반성하고 자신의 죄를 돌아보게 된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심지어 한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한 사람, 한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 셀레네님 아래에서 그의 말을 듣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이 인생에 한 번의 후회도 없이 살아왔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살아온 순간, 내가 믿었던 모든 순간들에 일말의 후회도 없음을 다짐한다. 다른 사람들 또한 내가 후회 없이 살아왔다는 것을 알겠지. 그런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은 주변 사람들의 많은 안타까움과 슬픔을 얻었다. 신께서 나를 너무 사랑해서 빨리 품에 데려가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유서를 작성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이 선택을 미련하게 생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도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정해진 나의 죽음을 조금 앞당기는 것뿐이니, 다들 너무 크게 안타까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셀레네님께서 내게 기적을 내려주셔 내가 살 수 있는 날이 더 늘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앞서 들었던 신께서 나를 너무 사랑해서 빨리 품에 데려가고 싶어 이런 병을 내렸다는 말조차도 나는 믿지 않는다. 신께서는, 셀레네님께서는 더 이상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인간에게 병이나 재난을 내려주지 않는다. 내가 유언증서와 별개로 유서를 쓰는 이유는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그러니 부디, 천천히 읽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보통 재난이나 역병이 돌아 세상이 시끄러워질 때, 죽음에서 겨우 살아난 사람들은 불로 뒤덮인 혹은 물로 뒤덮인 어떤 큰 새를 하나 보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재난과 질병의 신으로도 불리는 셀레네의 조력자라고 불렀다. 사람들에게 병과 재난을 가져다주는 존재, 조력자. 누구도 그것에게 이름을 붙여주진 않았다. 그것은 셀레네의 조력자임과 동시에 상현의 수호자였으며 무차별하게 사람을 물건을 사용하듯 낭비하는 괴물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것에게 감히 '인비(人費)'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인비는 불이기도 하고 물이기도 하다. 물이나 불로 둘러싸인 사람의 몇 배에 달하는 크기의 새,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죽이는 끔찍한 존재이다. 이전에는 분명 사람들에게 불과 물을 나누어주고 사람들이 편히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존재였으나, 셀레네의 뜻에 따라 변질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가? 당신이 믿는 신이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가? 내가 믿어왔던, 당신이 믿고 있던 셀레네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부디 알아주길 바란다. 신은, 셀레네는 더 이상 인간을 사랑할 줄 모른다. 낭비하는 법을 알았을 뿐.
돌이켜보면 재난과 역병이 도는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고 했다. 잘못을 저지른 마을에 신이 벌을 내리거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 병을 내려 그에게 고통을 주고 참회하는 시간을 주었던 것이다. 이는 우리의 신이 인간이 선하다고 믿기 때문에 고통을 주어 인간이 다시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라. 사람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자연재해가 아닌, 원인을 알 수 없는 재난을 보아라. 죄를 지은 사람이 어느 날 벌을 받아 아픈 것이 아닌, 힘들게 살아낸 사람들마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병을 앓고 있는 모습을 보아라. 이게 어떻게 신이 내리는 벌인가? 더 이상 이것은 신이 내리는 벌이 아니다. 신이 하는 일종의 '청소'일 뿐이다.
처음에는 분명 악해진 사람들을 벌하기 위해 내린 것들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셀레네의 조력자인 인비는 셀레네가 더 빠르고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벌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존재이다. 하지만 범위가 넓을수록 정확도는 떨어진다. 숲에는 많은 식물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서 독이 든 버섯만 모조리 없애버리기 위해 숲 전체를 태우는 꼴이란 말이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결국 소수의 죄인을 제거하겠다는 신의 뜻은 오히려 다수의 죄 없는 사람들까지 고통과 충격에 닿게 했고 세상 사람들은 더더욱 신을 붙잡고 빌었다. 제발, 제발 무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안전한 길로 이끌어주시옵소서. 셀레네를 찾지 않던 사람들마저 질병과 재난을 손에 쥐고 있는 셀레네에게 빌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젠 그 숲에 없애야 할 존재가 살지 않음에도 신은 마치 병을 주고 약을 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불을 붙였다가 또 엄청난 물을 쏟아부어 물에 잠기게 했다. 이것이 진정 옳은가? 셀레네는 더 이상 인간을 사랑해서 인간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다고 볼 수 없다. '자신을 믿어주고 찾아주는 존재들'이 필요할 뿐이다. 권력, 그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사람들은 종종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자신이 믿는 신을 찾곤 한다고. 셀레네는 그 사람들의 관심에 눈멀어 그들을 해치기까지 하는 파괴자일 뿐, 더 이상 신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라. 너는 내가 있어야 해, 그렇지? 그 말에 확신을 받기 위해 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파괴자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집단 호구가 아니다. 신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으며, 우리처럼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존재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행동을 이유 없이 지속한다는 것은 이미 사람과 같이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선한 신 아래에서 많은 것을 보고 자란 사람들은 본디 선하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선하다고 아직까지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결국 신의 잘못이다. 우리는 우리를 키워준 사람들을 보고 자라난다. 사람들의 악행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보고 배웠기 때문에'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누구를 보고 배웠겠는가?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죄'라는 것을 알고 행하게 되었는가? 당신은 누구의 행동을 보고, 듣고, 따라 하며 자랐는가? 부디 잘 생각해 주길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더 이상 그에게 배울 것이 없다. 배워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에게 벌을 내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선한 것을 보고 자랄 수 있도록 세상을 직접 꾸며나가는 것뿐이다. 내가 죽고 난 후, 모두 셀레네에 관한 모든 것은 불에 태우거나 바다에 던져 그가 잘못을 돌이켜보고 반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면 좋겠다.
당장 당신들은 이 유서를 보고 나를 미친 사람이나 헛소리를 지껄이는 할머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신 아래에서 당신들을 이끌고 그만큼 신에 대해 많이 알고 노력했던 사람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다시 한번 더 언급하자면 나는 내가 신을 믿고 그의 아래에서 일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들 또한 내가 이것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것 또한 신의 가르침일지도 모른다.
가르치는 자라고 모두 옳으랴. 때로는 배운 사람이 하나를 더 창조하고 응용하게 되는 법이며, 배운 자가 가르쳤던 자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호받았던 때가 있다면 반대로 우리가 지켜줄 때도 있어야 한다. 평생을 보호받기만 하며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어른의 보호에서 벗어나서 살아가고, 어른이 노인이 되어 자라난 어른들에게 또 보호받는 것이 반복되듯이 말이다. 우리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할 때 신이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의 자리를 찾아주었다면, 이젠 우리가 신의 자리를 찾아주고 가르쳐 주어야 할 때이다. 그것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다. 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읽을 당신은 기계가 아니라 창조주 아래에서 태어난 인격체라는 사실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언제 다가올 것인지 알 수 없는 인비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더욱 깊게 학문에 눈을 떠 우리를, 그를 지키는 방법 밖엔 없다.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고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질병과 재해, 어떤 것이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것에 관심이 많았다. 강도가 어떻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크기의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무엇이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지는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대상 같은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죄를 지은 한 사람을 없애기 위해서 수백 명, 수천 명이 희생되어도 그것은 신에게 가치 없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내용이 담긴 신을 열렬히 믿던 한 사람의 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