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성숙하지 못할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목놓아 울었다.
나는 평생을 성숙하지 못할 우리의 생에 대한 고민을 종종 하곤 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동경했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단지 '성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왜? 도대체 왜? 왜 사람은 성숙해야 할까? '성인'이 된다고 모두 '성숙'하는 것은 아니잖아. 아니, 애초에 인간이란 '성숙한 존재'였던가? 사람은 보통 '철이 든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사람들이 바라는 '성숙'일지도 모르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정의했고, 그것을 적어내려 갔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모두 이번이 처음 사는 생처럼 이번 생의 기억만 가지고 살아가는데 도대체 왜? 왜 성숙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이 인생을, 이 모든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한 것도 아니고. 설령 반복해 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는데.
"아빠를 이해해 줘야지, 네가. 아빠는 부모가 처음이잖아."
평생을 성숙하지 못할 사람들 사이에 태어나 성숙을 강요받았던 우리들은, 가장 먼저 가족들부터 마주했을 것이다. 본인이 부모가 처음이어서, 몰라서 그랬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자식이 처음이었음에도 처음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들의 처음만 강요받으면서 살아가야만 했고, 결국 우리는 모두 성숙하지 못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 아래에서 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일까? 지극히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모두 익숙해지는 것일 뿐, ‘성숙’해질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모두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나가는 것만 같았다. 다들, 미성숙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성숙’을 강요하고 또 강요하고. 나는 평생을 성숙하지 못할 사람들을 보고 숨죽여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아, 이 얼마나 가치 없는 삶이란 말인가? 평생 이룰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늙은 노인이 되기 전에 성숙한 사람들이 있겠지,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숙'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겠지. 하지만, 내 생각은… 성숙해지는 사람들은 죽는다고. 그렇게 결론지었다.
일찍 생을 마감하고 떠나는 모든 사람들은 사람이 평생 가지지 못할 '성숙'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태초에 신이 우리를 만들 때, 우리에게 살아가는 모든 방식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 미성숙한 실력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접하고, 또 찾아나가고. 완벽을 이루고서도 '욕심'때문에 평생을 성숙하지 못했다.
아니, 여기서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성숙'이라는 것은 무엇인지가 먼저겠지. 하지만 '성숙'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의견이 조금씩 달랐고,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그럼에도 내가 사람들이 모두 '성숙'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안타까움에 울음을 터트린 것은 결국 모두가 추구하는 '성숙의 본질'은 같았으니까. 결국 다른 의견이어도 모두가 생각하는 '성숙'은 비슷했으니까. 완벽해야 하고, 양보할 줄 알아야 하고, 본인의 의견만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다 포용할 줄 아는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성숙하다'라고 불렀다. 그럼 여기서 완벽은? 아마 그것까지 파고들면 끝없이 말이 이어지겠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이 곧 성숙이라면 당연히 '성숙한 사람' 또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실수를 하기 때문에 '미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누구나 종종 본인의 의견을 강조하고 싶고,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신념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전부 포용할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단어를 바꾸어 말해보자.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를 하고, 서툴고, 의견을 조율해 나가고, 같이 토론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새로운 결론을 낸다. 완벽과 성숙은 비슷한 의미로 돌아오는데, 왜 사람들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성숙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을까? 왜 모든 사람들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사람들은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 또한 완벽과 성숙, 그것들을 강요받고 자라왔다.
네가 누나니까.
네가 장녀니까.
네가 딸이니까.
네가 이제 성인이니까.
완벽까진 바라지도 않아. 성숙한 행동을 해야 해.
처음엔 성숙해 보이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성숙해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사람들이 말하는 '성인'일 수 있을까. 그들은 어떤 가치관과,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저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들 또한 완벽과 성숙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자라났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완벽' 혹은 '성숙'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저들은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고 나를 떠받들어주고, 나를 동경해. 그런 말들을 했다. 마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우월감, 혹은 겸손을 떨기도 했고 이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 성숙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완벽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데, '성숙한 것'이 당연하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되지만 성숙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강요하는 '성숙'은 '완벽'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데, 왜 완벽하지 않아도 되지만 성숙해야 한다고 하는 걸까. 엄청난 모순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성숙'이라는 새 단어 속에 '완벽'이라는 단어를 숨겨두었음을. 한참을 남을 동경하다가 알았다. 놀랍게도 나는, 그렇게 자책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의문을 가지고 이런 생각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책'의 연속이었다. 저 사람들도 사실 성숙한 것이 아니라고? 사람은 전부 성숙할 수 없다고? 내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깨져 조각나는 기분. 힘들게 쌓은 내 탑이, 고작 작은 바람이었던 동경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다시 내게 돌아올 때는 폭풍이 되어 다가와, 쉽게 무너졌다.
아, 결국 사람들은 '완벽'을 쫓고 있었음을. '성숙'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완벽'한 사람들을 동경하고 쫓으려고 했고, 결국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이 모든 것은 모순이었음을. 모든 것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나는 올라오는 많은 감정들을 참아낼 수 없었다. 분노, 슬픔, 안타까움, 혹은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에서 오는 기쁨.
감정의 표출이 눈물을 쏟아내는 일은 아니었다. 시작은 웃음이었다. 그저 기쁨에 찬 웃음? 아니면 성숙하고 싶어 발버둥 치고 결국 평생을 성숙하지 못할 사람들을 향한 비웃음? 아마 두 가지 모두였겠지. 그리고 그다음은… 허탈감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우리의 인생이 이토록 의미 없는 것만 쫓다가 서로를 동경하고, 시기하고, 가르치고…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것만 같아서. 지금까지 완벽을 위해, 성숙을 위해 걸어온 내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오직 그것을 위해 살아온 것만 같았는데, 그 성숙에 닿으면 나는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행복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자리에서 내가 성숙하지 못한 채로 연기하면서 존경받는 것이 전부라면, 이 모든 노력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성숙해 보이기 위해 베풀었던 친절, 위선, 호의! 그 모든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는 거지? 나 또한 결국 '연기'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이제야 알았다.
터벅, 터벅. 조용한 집안을 나선 것은 그다음이었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부는 깜깜한 밤. 달빛도 겨우 내려오는 그믐달의 시간. 허탈감을 가지고 향한 곳은 어느 한 절벽 위였다. 도시가 가장 잘 보이는, 완벽을 위해 끊임없이 달빛보다 더 빛나는 건물들이 가득 보이는 곳.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작게나마, 많이 잘 들리는 곳. 그곳에 올라 이내 내리는 것 같지도 않은 달빛이 나를 비추고, 어디를 비추는 건지 모를 도시의 조명들이 마구 빛날 때. 나는 비로소 그곳에 주저앉았다.
'마지막'이었다. 나는 평생을 성숙하지 못할 사람들 사이에서 목놓아 울었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만, 나는 쉼 없이 울었다. 마치 누군가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 서럽게, 더 속상한 듯이. 그 흙바닥에 엎드려 울다가 또 고개를 들어 그 도시를 봤다가, 또 고개 숙여 한참을 울다가.
이내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 울음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던 풀벌레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오기 시작할 때, 차디찬 바람이 나를 스쳐 지나갈 때, 나는 생각했다.
아, 사람이 성숙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버리는 것이 어쩌면 '완벽한 성숙'일지도 모른다고. 바람이 분다, 그러니 죽어야겠다고. 천천히 사라질 그믐처럼, 나도, 이 모든 것을 알아간 나도 사라져야겠다고.
달빛이 참으로도 시린 겨울,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성숙을 향해 끊임없이 빛나는 도시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성숙해지는 사람들은 죽는다고. 그렇게 결론지었다.
글에서 주인공은 성숙과 미성숙에 대해 고민하고 알아가게 된다. 성숙이 무엇인지, 결국 주인공이 내린 결론과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성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성숙해지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