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안개

무덤의 도시

by 도영

바다 근처에 살다 보면 날이 흐려 막 비가 올 것 같을 때, 혹은 비가 내릴 때 안개가 싸여 바다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안갯속을 유심히, 아주 자세히 바라봤다. 그 안에 꼭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서. 한 번은 그 속을 파고들면서까지 바다에 물질을 하러 나선 배의 빛을 보았고, 또 한 번은 그 속을 힘겹게 날아오르는 새를 보았다. 그리고 이후에 다른 특별한 걸 발견한 기억은 없다. 짙은 안개는 종종 바람에 함께 날려 차갑고 눅눅한 바람을 만들어 어쩐지 음산한 기분이 들게 하기도 했지만, 딱히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일 같은 건 없었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일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 뛰어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다.


때는 5년 전, 내가 처음으로 혼자 나가서 살게 되었던 날이었다. 산동네에서 자라온 나는 가까이 바다가 보이는 동네로 발을 들였다. 인적이 조금 드문 동네였지만 그만큼 자연의 풍경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기에 나는 이 동네에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또, 나는 온전히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자연들을 벗 삼아 휴식이 필요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조용한 이 동네에서 글을 썼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 생각, 눈에 담은 풍경들. 그것들을 글로 담아내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었으니까. 마을에 사람이 몇 없었기에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지기도 했다. 과일을 파는 정 씨,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박 씨, 생선을 썰어 파는 이 씨, 철물점을 하던 한 씨… 나이는 전부 달라도 우리는 전부 친구처럼 지냈다. 이곳이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사람도, 이 지역도 전부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거든.

이렇게 살기 좋고 경치가 좋은 이곳에 사람이 많이 줄어든 이유가 가끔 궁금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금방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 경치 좋잖아. 마치 꿈속의 세상 같은 그런 곳… 내가 죽어서 천국에 닿으면 꼭 여기일 것 같다고 말하더군. 대부분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여기 잠시 발을 들였던 사람들은 결국 죽기 직전에 꼭 여기로 오게 되어 있어. 한때는 이곳을 '무덤의 도시'라고 불렀지. 다들 죽을 준비를 하러 오는 곳. 이런 곳에 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그런 말을 하니까."

그러고 보니 나도 이곳의 풍경이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신과 같은 자비롭고 따스한 사람들이었으며, 눈에 담으면 담을수록 이곳이 천국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양한 날씨가 꼭 나를 '살아있다'라고 느끼게 했다. 이곳에서 설령 죽더라도 나는 평생을 살아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바다 근처에 살다 보면 날이 흐려 막 비가 올 것 같을 때, 혹은 비가 내릴 때 안개가 싸여 바다가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 나는 앞서 이 글을 시작할 때 언급했듯이 그럴 때마다 안갯속을 유심히, 아주 자세히 바라봤다. 한 번은 안갯속을 파고들면서까지 바다에 물질을 하러 나선 이 씨가 가진 배의 빛을 보았고, 또 한 번은 그 속을 힘겹게 날아오르는 새를 보았다. 그 이후로 특별한 걸 발견한 기억은 없다. 짙은 안개는 종종 바람에 함께 날려 차갑고 눅눅한 바람을 만들어 어쩐지 음산한 기분이 들게 하기도 했지만, 딱히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일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어쩐지 그 안개를 보고 있으면 슬픈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 그리 슬프게 느껴졌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마치 속이 닳아 망가지는 것 같았다. 안개가 바람에 날릴 땐 마치 그 바람에 온몸의 살이, 내 속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동네에 저 이상한 안개의 존재는 어쩌면 하나의 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것이 또 하나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도 결국 완벽한 곳은 아니구나,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해 천국으로 닿은 사람들의 한이 어쩌면 저 안개에 서려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어서. 그 안개가 더 아름답고 눈부시게 느껴졌다. 그래서 날이 흐릴 때고, 비가 올 때고 나는 안개를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그 안개를 보기 위해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리기도 했다. 안개를 보고 느껴지는 슬픔, 통증, 그런 것들이 가끔은 짜릿한 희열이 되어 다가올 정도로 나는 안개에 집착하듯 늘 그 안개를 보러 갔다.


그리고 어느 초여름, 눈을 뜨자마자 꿉꿉한 기분이 드는 것이 분명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날이 흐리고 습기가 가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개를 볼 생각에 금세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아침 산책을 나가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바다 근처로 가 그 짙은 안개를 바라보다 돌아오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기지개를 켰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아, 오늘은 죽어도 정말 괜찮겠다 하는 날. 너무 힘들고 힘들던 그 삶의 끝에 드디어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아 오늘은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마음이 맑은 날. 오늘은 어쩌면 그런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마음을 품은 채 천천히 밖으로 나서 동네를 걸었다. 내가 너무 이른 시간에 나온 것인지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시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안개를 보러 나와버렸는데, 해가 아직 제대로 다 떠오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다들 곧 깨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어쩐지 이 마을에 나 혼자 버려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고요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나는 이 쓸쓸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해 안개가 흩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안개는 여전히 축축하고 어둡고 어딘가 마음이 찢기는 기분이 들었다. 안개를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져 여전히 나는 쉽게 안개를 떠나지 못한 채 한참을 서서 안개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작은 확신이 드는 순간이 생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 안갯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간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그런 순간. 나는 천천히 발을 떼고 안갯속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착각으로 시작한 발걸음이었지만 안갯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무언가가 보이거나 손에 잡힐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니,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안개 안으로 발을 얼마나 들였을까, 내가 어디쯤 걸어 들어왔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때, 무언가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분명 이곳이 바다가 아닌 육지인 것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그것이 땅 아래로 나를 끌어들이는 기분. 나는 차마 내 발 쪽으로 시선을 내리지 못한 채 굳어버려 앞만 바라봤다. 안갯속에서 내 발목을 잡은 어떤 손 말고 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수십 개의 손. 손이 보였다. 그 손들은 마치 나를 잡아끌기 위해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굳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이려 애쓰다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겨우 거친 숨을 내쉬면서 손바닥으로 땅을 더듬거렸다. 안개 때문에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아까의 그 손들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앉은자리에 무언가가 가득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어 더듬거렸으리라. 손에 딱딱하면서도 건들면 바스러지는 느낌이 드는 무언가가 가득 잡혔다. 어쩌면 그런 게 한 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호기심에 그것들 중 하나를 집어 들어 확인했고, 바로 그것을 집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안갯속을 뛰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뛰고 또 뛰었다. 순식간에 희열처럼 느껴지던 안개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안개에서 뛰어나와 마을을 뛰어다니면서도 마치 마을은 폐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쩐지 여기 있으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 급하게 짐을 싸서 그 마을을 떠나왔다.

그 일은 아직까지 나를 따라다녀 다시는 그곳에 발을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나를 열심히 살게 만들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정말로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또 도망치고, 도망치게 될 것이다. 손에 잡히던 그 사람들의 손이란.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던 사람의 잘린 손, 머리, 팔, 다리, 그런 것들의 모습이 안개에 가려져 흐릿하게 보이던 그 풍경이란… 가끔 그곳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쩌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의 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실은 그 이후 5년이 지나기도 전에 그곳에서 정이 들었던 사람들이 그리워서 가끔 그 마을을 찾아갈까 고민도 하고, 주변을 알아보곤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마을은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마을은, 그 무덤의 도시는 과연 어디였을까?





가끔은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도 내가 본 것이 현실인지, 꿈이었는지 다시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글은 주인공이 현실에서 겪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당신은 '그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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