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마법사의 작품

그는 명백히 사람과는 다른 모습의 마법사의 작품, '괴물'이다.

by 도영
마법사님, 접니다. 마법사님께 글을 배우고 이 숲 속에서 이제 홀로 먹고 살 정도는 됩니다.
굳이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소리에 겁먹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마법사님, 요새 꽤 바쁜 일이 있으신지 계절이 하나 지나도록 오시지 않는 것이
걱정이 되어 새에게 부탁해 이 편지를 보냅니다.
참, 그리고 이 숲 어딘가에 괴물이 사람들을 잡아간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마법사님께서 혹 제게 오시다 이 숲에서 괴물이라도 만나 다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꼭 저를 잊지 말고 와주셔야 해요.


그는 편지를 다 적어 내려 간 후 곱게 접어 책상 위에 두고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 그래도 멀쩡한 오른손이 있어서 다행이야. 사실상 눈을 감았다 뜨는 행위도 어려운 일일 정도로 얼굴은 흘러내린 모습의 그는 명백히 사람과는 다른 모습의 마법사의 작품, '괴물'이다.

그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참 끔찍한 괴물이었다. 흘러내린 얼굴 사이로 눈알은 곧 떨어져 나갈 것 같았으며, 사실상 얼굴에 무엇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또한 죽어버린 왼쪽 팔을 마법사가 잘라 준 것도 벌써 3년이나 더 된 일이며, 죽어가고 있는 오른쪽 다리는 이미 색이 변해 썩어가는 것 같았다. 썩어가는 다리는 손톱으로 눌러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많이 죽어 있었다. 이 다리는 마법사가 돌아오면 잘라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 그는 그런 존재였고, 죽은 피부를 썰어내는 것은 아프지 않다. 마법사는 괴물을 만들어 낸 존재였는데, 사람처럼 만들다가 실패를 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썩어서 썰어내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다. 미래에, 아주 먼 미래에 마법사가 다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처음 괴물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겨울'이 다가올 때쯤이었을 것이다. 마법사는 처음 보는 괴물의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거나 무서워할 수 있으니,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그때 괴물은 언어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마법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이 괴물인지 알 리가 없다. 다만 이후에 다시 한번 더 마법사가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며 숲에서 그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기에, 그는 마법사가 가르쳐 준 것들을 배우고 익히며 사람들과 만날 날을 기다릴 뿐이었다.

으어어…, 그가 낼 수 있는 소리는 그것이 전부였지만 마법사에게 글을 배웠기에 남은 팔마저도 잘라낼 일이 없다면 당장은 소통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는 마법사가 오지 않게 된 후로 마을까지 내려가진 않더라도 숲을 산책하러 나가게 되었다. 물론 아직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직접 마주친 적은 없다.

흘러내린 피부 때문에 눈앞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가려진 틈 사이로 작게 보이는 숲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큰 나무들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의 따스함, 어느새 꽃이 지고 단풍도 떨어지고, 거의 가지만 남아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는 그 모습을 참 좋아했다. 몇몇 나무는 잎을 겨울에도 그대로 품고 있었지만, 그 나무들보다는 나뭇잎이 전부 떨어지고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좋았다. 볼 때마다 마법사와 다르게 피부가 흘러내리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뭇잎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나무와 가지만 남은 나무 모두 어우러져 함께 숲을 꾸려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했다. 언젠가 마법사가 말하던 '때'가 오면 자신도 저 나무들처럼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날이 오게 되겠지. 괴물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졌다. 사람들은 분명 마법사와 비슷한 모습일 테니 친절하고 따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괴물은 그렇게 또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마법사가 없는 시간을 보냈다. 마법사가 구해다 주었던 고기와 내장, 어떤 신체의 일부분들… 식사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떨어져 간다.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왔는데, 한참을 오지 않는 마법사도 걱정이 되었다. 돌아올 거라고 믿었는데, 믿고 있었는데. 혹여나 나를 버리고 가신 것은 아닐까? 더 이상 내 끔찍한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닐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괴물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마법사를 찾아 내려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마법사는 괴물에게 때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오지 말라고 했으며, 사람을 마주치는 일을 만들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괴물의 머리에서는 그것이 지워진 지 오래된 듯했다. 괴물은 잠을 자다가 지쳐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 괴물은 내리는 눈을 맞으며 천천히 마을로 걸어 내려갔다. 하얗게 쌓인 눈 위로 괴물의 발자국이 새겨진다. 하지만 그 위로 다시 눈이 쌓이고 있으니 그의 흔적이 남을 리가 없다. 터벅, 터벅. 그가 마을로 발을 뻗을수록 눈이 내려서인지 이상한 한기가 감도는 기분이 든다.

얼마나 걸었을까?

투둑, 턱.

그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다. 그는 눈밭에 엎어져 겨우 몸을 일으키고 제 무릎을 털어냈다. 커다란 나무라도 쓰러져 있는 걸까? 그는 자신을 넘어지게 만든 원인을 찾으려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끝에는 일그러진 무언가가 있었다. 눈밭에 엎어진 저것은, 사람인가? 혹시 숲에 들어왔다가 눈이 와서 이곳에 쓰러진 것은 아닐까? 그는 걱정되는 마음에 재빨리 사람으로 추정되는 자를 붙잡아 흔들어댔다. 그가 그것을 잡고 깨우듯 흔들자 그것의 얼굴이 보인다. 괴물과 똑같이 살이 흘러내린 모습, 차마 썩어 이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피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괴물과 같은 '괴물'이다. 그는 잠시 놀란 얼굴로 그것을 바라봤다. 이미 숨통이 끊어져 움직이지 않는 그것은 피를 토해내고 죽어있었다.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누군가가 이것을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누가?

괴물은 그제야 마을로 갈 생각을 멈추고 마법사가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천천히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괴물을 준비 없이 만나게 되면 사람들이 놀라고 무서워할 수 있다는 그 말, 어쩌면 그 말의 뜻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들이 나 같은 괴물을 이해하기엔 아직 너무 어려운 일일까? 그렇다면 마법사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자신 때문에…?

괴물은 생각을 멈추고 다시 마을로 향했다. 급한 마음에 마구 뛰고 또 뛰었다. 어쩌다 넘어져 내려가는 길에 구르기도 했지만 그는 통증보다 당장 마법사가 위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 또한 아까 본 그것처럼 죽임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 같은 존재가 또 존재하는 걸 보면 마법사가 또 자신을 만들어주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마법사가 죽으면?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없다. 아, 결국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따스하지 않구나. 눈처럼 포근하게 쌓이면서도 결국 가까이 닿으면 차가운 존재였구나. 그가 했던 모든 기대가 깨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법사는 엉망으로 만들어진 자신을 위해 나를 세상에서 지우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구나.

그는 마법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 사람들이 원망하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뭘 했지? 나를 만든 일? 그렇다면 나는 뭘 했지? 태어나서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저 사람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 될 수 있는가? 화가 났다. 마법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나는 마을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런 다짐을 하며 멈추지 않고 뛰었다.

겨우 그가 마을에 닿았을 때, 마을은 이미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피부가 썩고 얼굴이 흘러내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해 결국 썩어 숨을 쉬지 않는 것도 있었으며, 끔찍하게 피부가 썩어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며 버티는 사람도 있었다. 괴물은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의 행방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떠니, 네 생각은?"

멍하니 서있는 그의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 마법사다, 마법사가 멀쩡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서있다. 괴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법사의 얼굴을 바라본다. 마법사는 환하게 웃으며 괴물에게 다가와 녹아내린 그의 얼굴을 쓸어준다.

"그래, 맞아. 보이는 대로 실패했어.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와 주지 않아서 모두 청소하기로 했단다. 다음엔 성공할 수 있겠지?"

마법사가 괴물을 끌어안고 다시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괴물은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괴물은 녹고 녹아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한다.

"으아악!"

멀쩡하던 사람들의 얼굴도 흘러내리고, 피부가 썩어가기 시작한다. 마법사는 만족한 듯이 웃으며 썩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정말 어리석구나. 나는 이렇게 마음이 나쁜 존재를 만든 적이 없는데.

마법사는 사람은 모두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악한 행위는 서로를 해칠 뿐이었으며, 함께 살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고 사람들에게 선함을 가르쳐주기 위해 그들에게 '질병'과 '재난'을 만들어 선물했다. 결국 사람은 환경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재난과 질병을 통해 함께 돕고 선해질 수 있다고, 아픔 속에서 성장하여 함께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 정말로 그 믿음 그대로 몇몇 질병과 재난을 내려 사람들이 함께 돕고, 이겨내는 장면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결과는 대실패였다. 사람들은 병에 걸려 썩어가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괴물 취급하기 시작했으며, 해결 방법을 찾기는커녕 다른 사람을 헐뜯기 바빴다. 마법사가 바란 것은 이런 게 아니었음에도, 이러기 위해 이런 것들을 선물한 것이 아님에도.

마법사는 한숨을 내쉬며 휘파람을 불었다. 마법사가 휘파람을 불자 내리는 눈들이 불씨로 변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썩은 피부를 이끌고 멀리 도망치지도 못한 채 몸에 불이 붙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들었는데, 이번에도 실패했구나. 즐거웠단다, *문둥아.




*문둥: 문둥병. 질병의 이름.



인간에게 따스함을 내려주던 봉황은 마냥 사람들에게 따스함만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함께 협력하며 살아나가길 바랐는데, 종종 그 흐름이 깨져 서로를 해치고 망가뜨릴 때마다 실망하고 슬퍼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사람들에게 함께 힘을 모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가르치지 위해 재난과 질병을 만들어 그들에게 선물했다. 사람들은 그의 계획대로 같이 이겨내며 살아나갈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서로를 더더욱 배척하고 헐뜯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그 모습에 실망한 봉황은 결국 그 따스함으로 모두를 태워버린다. 그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신, 셀레네'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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