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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May 12. 2019

양재천, 나의 양재천

걸으며 생각한 추억들

봄의 양재천은 너무 아름답다


모처럼 양재천을 걸었다. 누군가에게는 물 좋고 공기 좋은 베스트 산책로지만 나에게는 그저 1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한 곳, 양재천. 러닝을 좋아하는 백은 한 달에 두어 번 양재천을 뛰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 근처에 있는 건 행운이라 말했다. 부러워하는 건 걷고 뛰는 사람뿐 아니었다. 천을 따라 좋은 카페와 음식점이 생기면서 분위기 내러 오는 친구들도 늘었다. 등잔 밑은 어두운 법, 매봉역 맛집은 꿰차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의 "거기 가봤어?" 라며 이야기해주는 곳 중 아는 곳은 많이 없었다. 얼마 전, 백이 동네 햄버거 맛집이라고 이야기했던 '풍류랑', '원스타' 가게는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실제 맛은 어땠냐고? 꽤 괜찮아서 지금도 자주 가는 가게들이다. 이런 가게가 언제 생겼을까. 햄버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내가 우리 동네 가게를 모르다니, 이건 뭐... 등잔 밑이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타들어가는 수준이 자나?


90년대 중반, 양재천은 이렇게 핫한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기피지역이었다. 봄이 지나고 초여름만 돼도 주위 도로에는 멀리서 보면 먼지 같은 것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눈이 닿는 모든 곳을 점령한 그것들은 '하루살이'와 '파리'였다. 천 주위에는 각종 토사물과 쓰레기가 넘쳐났으며, 동네 개들이 만들어낸 '개똥'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수질은 5 급수, 물은 당연히 똥물이었다. 우리는 항상 양재천 똥물이라고 불렀다. "양재천 똥다리에서 주워온 놈"이 우리가 심심치 않게 했던 욕 중 하나였다. 현대아파트와 우성아파트 사이에 놓여있는 영동3교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면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악취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선 항상 영동3교를 지나야 했다. 동생과 나는 악취를 조금이라도 피하겠다며 숨을 꾸욱 참고 대교를 뛰었다. 당연히 초등학생 한숨으로는 건널 수 없는 다리라 맨날 헥헥거렸다.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면 온갖 종류의 파리와 하루살이가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면 사정없이 손으로 파리와 하루살이를 잡곤 했다. 하루살이 떼를 향해 손바닥으로 박수를 탁 치면 최소 세네마리는 사망이었다. 파리가 날아갈 방향을 예측해 주먹을 꽉 쥐면 어느새 파리가 들어와 있곤 했다. 파리나 하루살이를 잡는 일은 동생과 나의 양재천을 걸어가는 도중에 생기는 하나의 재미였다. 한 손에는 쌍쌍바를.. 한 손에는 파리 시체를..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까지 딱히 큰 병에 걸린 적 없는 면역력과 어디를 여행하든 잘 버티는 다리 근력은 이때 형성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맨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파리를 잡는 나를 보며 후배가 "오올~ 민첩한데요. 그걸 어떻게 잡아요?" 라고 물었다. 옛날에 양재천이 말이야...말하려다 참았다. 너무 아재같지 않은가?


타워팰리스가 들어서고, 본격적인 강남 개발에 맞춰 양재천 정화사업도 진행되었다. 5 급수였던 물이 2 급수까지 좋아졌다. '양재천 똥물에 빠트려버린다.'라며 공부 안 할 때 어머니가 하던 농담이 이제는 양재천 수영장으로 현실화되었다. 수많은 벚나무와 주변의 카페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도 샛강을 찾고 있다. 95년에 10종밖에 살지 못했던 양재천에는 지금 200종 넘는 동물들이 살고 있다. 파리와 하루살이 떼는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주말, 집 앞 파리바게트에 꽈배기와 고로케를 사러 갔다가 샐러드와 샌드위치만 잔뜩 있는 매대를 발견했다.


"사장님, 고로케는 어디 가고 웬 샌드위치만 이렇게 많이 있어요?"

"어 그거~ 요즘 주말에 이쪽으로 나들이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팔리더라고."


한정된 인력이면 잘 팔리고 값비싼 것으로 집중을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논리임을 여기서도 깨닫는다. 그래도.. 나.. 원.. 참.. 원주민도 생각해주셔야죠?


양재천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백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늘공원은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하던 쓰레기산을 살짝 흙으로 덮은 곳이야. 악취와 침출수가 가득하던 곳에 처리장을 만들고 친환경 요지로 만들려고 노력했지. 안전하니까 마음껏 놀러 와도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축구장도 지었어. 쓰레기산 위를 걷는다며 몸에 안 좋을 거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많은 종류의 식물과 동물들이 다시 찾아오는 걸 보고 이용하기 시작했지. 지금은 옛날에 이곳이 어땠는지 기억도 못할걸?"


그렇다. 그런 곳이 있다. 볼품없던 곳이었지만 사람들의 노력으로 바뀌는 곳들. 양재천, 하늘공원, 익선동 등등 많은 곳들이 변했다. 원래 그곳이 그랬던 마냥 사람들은 쉽게 잊곤 한다. 누가 보면 짜잔 하고 바뀐 줄 알겠지만 사실 그 과정까지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녹아있다. 내 추억의 많은 곳은 강남에 머물러있다. 도곡동, 대치동, 양재천, 기타 등등.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앞으로는 자주 양재천을 걸을 거라는 이야기다. 나름 유구한 역사가 많은 곳이니까 말이다. 놀러 온다면.. 가이드는 가능하다. 단, 여름이 오기 전까지 만이다. 요즘 무더위는 정말...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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