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의 선택에 대하여
어느 날 스레드에서 한 그림을 보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고, 학교를 다니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병들고, 마지막에는 죽음 앞에 서 있는 그림.
짧은 산 정상 하나가 사람의 일생을 전부 품고 있었어요.
보는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사람의 삶이라는 게 이렇게 덧없구나.”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그 그림은 마음속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놓았습니다.
사람은 단 하나만 선택하지 못한다.
예전에 제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뭐든지 선택할 수 있을까? 딱 하나만은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게 있어.”
"그게 과연 뭘까?"
아이들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죽는 건 선택 못하죠!”, “부모님도 선택 못하죠!”, “성별도요!”, “환경도요!”
하지만 제가 말한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만은 아무도 선택할 수 없다.”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어요.
“선생님, 낙태도 있는데… 그럼 태어날지 말지도 선택 아닌가요?”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엄마의 선택이지, 태아의 선택은 아니지요.
‘태어날 존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단순한 문장은 사실 인간 존재의 핵심이에요. 우리는 불려 나온 존재라는 것. 초대장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의사를 묻는 편지도 오지 않았어요. 그냥 툭 이곳에 와버린 거예요.
태어남 이후의 선택은 정말 우리의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태어나는 것은 못 정해도, 그 이후의 인생은 내 선택이지.”
정말 그럴까요?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택이 아닌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누구의 아기로 태어났는지,
어떤 기질을 타고났는지,
초등학교 때 어떤 말을 듣고 상처받았는지,
어떤 사회 구조 속에서 성장했는지,
어떤 몸, 어떤 마음, 어떤 환경을 타고났는지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전부 자유로운 존재도 아니고, 전부 구속된 존재도 아닙니다.
그 사이 어딘가, 조금은 무력하고 조금은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갑니다.
다리를 절단한 아이의 이야기
며칠 전, 한 엄마의 인터뷰 영상이 추천에 떴습니다. 어린 아들이 병으로 인해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엄마의 이기적인 선택이다. 아이가 가엾다.”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 아이가… 제 곁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살아만 있다면 저는 괜찮아요.”
그 말에서 저는 다른 어떤 철학책보다 더 깊은 진실을 보았습니다.
의미는 ‘정상적인 삶’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 자체에서 생깁니다.
팔다리가 없어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어떤 인생길을 걷지 못해도…
누군가에게 그 존재 하나가 전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의미가 있는 삶”을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 삶은 ‘의미가 없더라도’ 사랑받을 수 있어요.
“엄마에게 나는 어떤 의미였을까?”
저는 자주 이런 질문을 품고 살았습니다.
'엄마에게 있어 나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엄마에게 기쁨이었을까, 아니면 부담이었을까?'
하지만 요즘은 그 질문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요.
제가 아이에게 최고라고 칭찬하면, 그 말 하나로 표정이 환해지는 걸 보면, 그리고 제가 조금만 풀어지면 ‘엄마니까’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자신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표현을 못 했거나 상처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거나 시대의 언어가 거칠어서 티가 안 났을 뿐,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전부’였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인생의 의미란 것이 꼭 대단한 성취, 성과, 명예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의 마음에서 조용히 자라난다는 것.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선택
그렇다면 인간에게 진짜 선택권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태어나는 것도 못 고르고, 나를 둘러싼 환경도 못 고르고, 몸도 감정도 절반 이상은 선택 불가능하지만…
단 하나, 여기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결로 살아갈 것인지.’, ‘이 주어진 조건을 어떤 의미로 바라볼 것인지.’
삶 그 자체는 선택이 아니지만, 삶을 해석하는 방식은 우리만의 선택이에요.
그게 인간에게 남겨진 작지만 가장 강력한 자유입니다.
덧없지만, 그래서 더 따뜻한 삶
슬프게도,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산 정상에 닿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내려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덧없어서 처연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붙잡고 살아가는 순간들이 너무나 따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름답습니다.
삶이 스스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사랑하고, 머물고, 돌보고, 바라보고, 걸어가기 때문에 의미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조용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태어나온 건 선택이 아니었지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는…오늘도 내가 고를 수 있다.”
그 작은 선택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전부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