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방문을 마치고 버킹엄 궁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런던까지 왔는데 왕실 근위병 교대식은 보고 가야 했다. 근위병 교대식을 언제 하는지 따로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점심시간을 전후해서 할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근무 교대를 할 것이고, 한밤중이나 새벽에 할 게 아니라면 어차피 관광객들이 찾아올 걸 아니까 사람들이 많이 오는 시간에 할 것 같았다.
버킹엄 궁전 앞은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서로 궁전 안 뜰이 잘 보이는 위치를 차지하려고 했는데, 담 바로 앞은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궁전 안 뜰에서 뭔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서 있었다. 오전 근무를 서던 군인들이 식사를 해야 하니까 점심시간 전에 교대식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12시가 한참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아닌가 싶어 궁전을 떠나려고 하는데, 황금빛 투구를 쓴 왕실 기마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씩 흩어지던 사람들이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고 궁전 앞으로 몰려들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곧이어 커다란 검은색 모자를 쓴 빨간 제복의 군인들이 대열을 맞추어 등장할 줄 알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궁전을 바라보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하다 내셔널 갤러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 날 후로 두 번 정도 더 버킹엄 궁전을 방문했는데 끝내 근위병 교대식은 보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근위병 교대식을 매일 하는 게 아니었다. 정해진 요일과 시간이 있는데 홈페이지나 관광 가이드 등을 보면 나오는 것 같았다.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근위병 교대식과 다른 일정이 겹친다면 다른 일정부터 소화할 계획이었던 데다, 버킹엄 궁전에 오려고 런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나 큰 즐거움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유를 붙여 버킹엄 궁전에 최대한 많이 와보고 싶었다. 설령 이번 여행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못 보더라도 나중에 런던에 왔을 때 시간표에 맞춰오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