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갤러리 앞은 언제나 음악이 흐르고 있어서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 날도 역시 한 남자가 멋들어지게 기타를 치고 있었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왔던 전설적인 제다이 기사 ‘요다’로 분장하고 공중에 붕 떠서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도 있었고, 바닥에 뭘 그리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무슨 작품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분필 같은 것으로 땅에 뭔가를 그리는 것을 보며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하던 땅따먹기가 생각났다. 작은 돌멩이를 손가락으로 튕겨가며 커다란 사각형 안에서 열심히 땅을 그렸었는데, 두세 명이 웅크리고 앉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게 딱 그 모습이었다.
트라팔가 광장 근처에 런던을 상징하는 명소들이 많아 내셔널 갤러리 앞을 종종 지나갔었는데, 정작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본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내셔널 갤러리도 영국 박물관 못지않게 유명한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암스테르담에서 미술관을 많이 방문했기 때문에 굳이 또 미술관을 방문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영국과 런던을 대표하는 곳인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갤러리 안은 역시나 수준 높은 미술품들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이탈리아 베니스의 풍경을 그린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 달 뒤 베니스를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그림들로 먼저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진짜 그곳에 간다는 게 믿기지 않기도 하고,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재미있을 뿐이었다. 이 놈의 눈이 문제였다.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네덜란드 국립 미술관, 반 고흐 미술관에서 명화들을 보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내셔널 갤러리에서 그에 못지않은 명화들을 보는데도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밖으로 나왔다. 늦은 오후의 햇빛이 트라팔가 광장을 감싸는 가운데, 아까와는 다른 남자가 역시나 멋진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