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책

by 히다이드

케임브리지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맑았는데, 창밖 구름이 점점 짙어지더니 런던이 가까워지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킹스크로스 역에 내렸을 때는 비가 그친 뒤였지만 여전히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고 거리는 비에 젖어 있었다.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은 날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걸어보고 싶었다. 차도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영국박물관까지 간 후에 트라팔가 광장을 향해 다시 방향을 잡고 걸어가다 한 번화가의 교차로에서 멈춰 섰다. 거기서 몇십 분을 더 걸어가면 트라팔가 광장이 나오고 바로 근처에 있는 버킹엄궁과 국회의사당, 빅벤 등을 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파리로 가는 유로스타를 타려면 일찍 짐정리를 하고 쉬어야 했다. 아쉬웠지만 내 영국 여행은 여기까지였다. 주변을 둘러보다 그 자리에서 방향을 돌려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영국 박물관 근처를 지나는데 식당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그전에도 오며 가며 종종 보던 곳이었지만 여행 중에 한식은 먹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었는데, 이 날 저녁은 날씨가 우중충해서인지 몸도 으슬으슬하고 뭔가 내 속을 안에서부터 데워줄 수 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뜨끈뜨끈한 국물을 내 몸이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한국 식당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라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 안은 내게 너무 익숙한 풍경이었다. 밥과 반찬들이 차려져 있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서너 명씩 둘러앉아 식사하고 있는 모습은 한국의 여느 평범한 식당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돌솥비빔밥과 빈대떡 등을 시켜놓고 푸짐하게 먹었는데, 잘 비빈 비빔밥 한입을 입에 넣는 순간 감기 기운이 있는 것처럼 으슬으슬하던 몸에 갑자기 열이 확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여행을 시작하고 오랜만에 느끼는 든든함이었다. 식당에 혼자 앉아 우리나라 음식을 먹고 있으니까 외로움이 갑자기 밀려오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시작한 후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20250109_마지막산책2.jpg




keyword
이전 10화케임브리지에서의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