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다들 자고 있었다. 바르샤바에 도착하려면 아직 좀 더 가야 했다. 다시 잠을 청해봤지만 잠이 안 와서 어두컴컴한 창밖을 내다보며 누워있었다. 새벽 5시가 거의 다 되어 버스는 바르샤바 중앙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한국인 동행과 역으로 들어갈 때까지 “여긴 안전하겠죠?", "여긴 안전해 보이네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는데, 그 학생이 나를 좀 모자란 사람으로 봤을지도 모르겠다.
역 안에서 한국인 학생과 헤어지고 화장실부터 찾았다. 밤새 버스를 타고 와서 화장실이 급했는데 화장실을 찾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지상에는 없고 지하층 구석에 있었는데 에스컬레이터가 없어서 지하층으로 내려가려면 캐리어 가방과 먹을 게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쇼를 하면서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겨우 화장실을 찾아갔는데 화장실 앞에 전철처럼 개표구가 설치된 것을 보고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했다. 동전을 넣어야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는데 폴란드에서 사용하는 동전이 없었다.
다행히 화장실 앞에 화장실을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나자 다른 급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이미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에 부리나케 티켓 창구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문을 연 곳이 없어서 대합실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시간은 가는데 시계만 보고 있으니까 속이 타들어갔다. 조금 기다리자 일부 창구들이 문을 열고 업무를 시작했는데, 그중의 한 곳에 가서 유레일패스를 개시해 달라고 하니 안에 있던 직원도 내용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창구로 가서 얘기해 보라고 했는데 직원이 알려준 창구는 아직 닫혀 있었다.
뒤늦게 창구 직원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사람도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옆에 있는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는데 시계를 보니 기차 출발 시간까지 10 분도 채 안 남아 있었다. 어쩔 줄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는데 안에 있던 직원이 유레일패스에 여권 번호를 적으라는 말과 함께 도장을 찍어줬다. “Thank you”라고 하고는 승강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출발시간까지 5분 정도 남아 있었다. 이거 놓치면 정말 안 된다는 다짐으로 죽을힘을 다해서 뛰었다. 화장실 갈 때는 낑낑대며 내려가던 계단도 뛰어서 내려갔다. 혹시 또 놓치기라도 할까 봐 눈물을 글썽이면서 뛰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내가 타고나서 잠시 뒤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