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 의도치 않게 식식대는 주부의 근무 일지
결혼 이후 이사를 여섯 번 했다. 여섯 번의 이사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사 결정은 모두 내가 내렸다. 남동생의 급작스러운 소천으로 친정엄마 옆에 살아야겠다는 결정, 전세로 평생 살 수는 없으니 은행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결정, 집을 사면서 발생한 대출 이자가 버거우니 친정으로 들어가야겠다는 결정, 해외 근무를 해서 돈을 더 모으면서 덤으로 아이들은 국제 학교를 보내보자는 결정, 낯선 땅의 이방인 생활을 청산하고 내 나라로 돌아가 속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정. 이 모든 결정을 내릴 때 남편과 의논도 했지만, 결정권자는 나였다. 매번의 결정마다 나는 남편을 놀렸다. 신중하게 숙고하다가 최종 결정은 마누라에게 넘기니, 평생 치마꼬리 잡고 살게 생겼다고.
삼 일 뒤에 일곱 번째로 이사한다. 이 이사는 내가 아닌, 남편이 결정한 이사다. 남편은 지금 사는 집이 싫다고 했다. 어둡고 추운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집을 빼기가 쉽지 않아 꽤 애를 태웠지만, 전세 기간 만료 일주일 전에 들어올 세입자를 찾았다. 마침 일전에 살펴본 19층의 남서향 집도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한 상태였기에 다행스럽게도 바로 전세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사할 집은 같은 평수의 집이지만 지금 집과 전세금 차이가 꽤 났다. 결국, 빚으로 빛을 얻었다. 그리고 빛만큼 중요한 것을 하나 더 얻었다. 일곱 번째 이사로, 항상 내 뜻에 가려져 있던 남편의 뜻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남편은 자기가 원하는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자신을 탐구할 여유 없이 자랐고 학교와 회사, 교회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며 사느라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분명 그에게 있는 그만의 취향, 기호, 그의 의사는 수면 위로 올라올 새가 없었다. 게다가 호불호가 분명한 나를 만나, 그의 뜻은 감춰지고 봉인되었다. 아내의 뜻을 존중하는 큰 그릇의 남편이 되고 싶었기에 후닥닥 제 목소리를 내는 아내의 결정에 동의해 주었다. 나는 점차 남편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고, 그의 뜻이라고 할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쁜 남편을 대신해 내 뜻대로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면 된다고 믿게 되었다.
지난 2년 동안 남편과 나는 싸우고 또 싸웠다. 무식하게 싸워서 서로 적잖이 상처를 주고받았다. 싸울수록 감정은 엇나가고 표현은 과격해졌다. 그러나 그렇게 싸운 덕분에, 상대방에 대한 ‘예단’의 껍질이 벗겨졌다. 남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들을 줄 몰랐던 나는, 남편에게도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 주파수를 맞추게 되었다. 그 첫 결정이 남편의 뜻대로 ‘전망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었다.
입주 청소비를 아껴보겠답시고, 세 시간 동안 이사할 집을 쓸고 닦았다. 나는 주방 싱크대와 안방 붙박이장을 닦고, 남편은 켜켜이 쌓인 창틀의 먼지를 제거하고 베란다 물청소를 했다. 남편은 청소를 마치고 베란다 창으로 성균관 명륜당, 명륜당 너머 비원 숲, 그 숲 위에 앉은 인왕산, 그 인왕산 위로 저무는 해를 바라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모아놓은 풍경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남편이, 내 눈에도 좋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