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작고 반짝이는 순간을 위하여
저녁 여덟 시는 직장 퇴근과 주방 퇴근의 이중고를 마친 시간이다. 텔레비전 뉴스나 보면서 다른 채널도 기웃거리다 조는, 알림장에 사인해달라는 막내 목소리에 선잠을 깬 김에 내일 먹을 빵 쪼가리가 있나 둘러보는, 출출하다고 입이 심심하다고 간식거리를 찾는 아이들을 조용히 눈빛으로 제압하는 시간이다. 내일을 위해 쉬어야 하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침대에 눕기는 좀 억울하다. 특히 목요일은 주중의 피로가 켜켜이 쌓였으나 아직 주말은 아닌 ‘주말권’이라 제일 피곤한 기분이 든다. 이럴 때, 목욕탕에 가야 한다.
저녁 여덟 시가 애매한 시간이기는 하다. 작은 동네 목욕탕에는 손님 두 명이 전부였다. 세신 여사님도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의 때를 벗기느라 정작 본인은 쉴 수가 없는, 여사님의 퇴근은 목욕으로 마무리되었다. 여사님은 열탕에 몸을 잠시 담그고, 때를 밀고, 샤워기로 몸을 씻었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카운터 가까운 캐비넷을 열어 옷을 꺼내 입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일일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세신 여사님은 카운터 여사님과 드라마의 지지부진한 전개에 대한 감상평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불투명 유리문 너머로 퇴장하셨다.
알람 소리를 듣고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유난히 목이 뻣뻣했던 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목욕 도구를 챙겨 아침 목욕을 왔을 때도 비슷한 장면을 보았다. 새벽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세신 여사님 두 분이 텔레비전 앞에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전날의 일일 드라마가 재방송되는 찰나, 한 분은 그거 봐도 뻔하다 그만 가자, 다른 한 분은 뻔한 거 다 알지만 그래도 봐야 한다셨다. 내일 와서 보면 되지 않냐는 한 분의 재촉에 결국 다른 한 분도 가방을 들고 일어나셨다.
출생의 비밀, 돈 많고 무례한 가족과 돈 적고 정다운 가족, 종반으로 향할수록 극악해지는 나쁜 인물, 착한 주인공의 승리라는, 제목과 배우만 바꾸어 계속 뻔한 스토리를 내보내는 방송사의 뻔뻔함에 기가 찬다. 공영 방송사의 전파 낭비일 수도 있지만, 삶은 일일드라마와 닮은 일면이 있다. 우리는 오늘에 비해 별반 달라질 것 없는 내일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살아간다. 인생의 중년을 지나고 있는 내게 닥칠 일들은 뻔하다. 늙고, 병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게 된다. 매일의 작고 반짝이는 순간을 누리는 나름의 대가랄까.
목욕탕 매표소에서 열쇠를 반납하다가 세신 여사님들의 일수 수첩에 시선이 갔다. 손바닥만 한 홍익사 비망노트에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힌 숫자들은 나의 어설픈 문장보다 힘 있고 묵직했다. 그 숫자들이 만든, 퇴근할 수 있는 오늘이, 내일도 오겠지.
#목욕탕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