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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끝 Mar 18. 2018

'아동안전지킴이집', 정말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나?

사회부 기자로 살았습니다 <2>

사건팀 기자로 지내다 보면 사건ㆍ사고뿐만 아니라 현장 발제에도 욕심을 내게 된다.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이 매일 벌어지는 사건ㆍ사고라고 하지만,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바꾸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른 현장도 놓칠 수 없어서다. 그래서 사회 곳곳의 현장을 돌아다닌다. 정해진 곳은 없다. 매일 오후, 마감을 하고 나면, 그다음 발제 거리를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경찰서 이외에도 발길이 자주 닿는 곳이 있다. 학교 주변, 공원, 광장, 골목길, 주차장, 쓰레기장 등이다. 발길을 멈추면 주변을 주시하며 쭉 관찰한다.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묻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밤과 낮을 병행하여 벌인다. 그래야 정확히 문제를 알 수 있어서다. 그러다 보면 정말 운이 좋게도 취재거리를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동안전지킴이집'이 그랬다.


하루는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 어두움이 깔린 저녁에, 초등학교 주변을 맴돌았다. 학교 근처에 문방구가 있었는데, 외벽에 내걸린 '아동안전지킴이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간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그곳이 아동안전지킴이집이라는 걸 인식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컸다. 그때 '이걸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을 지나가던 한 아저씨에게 다가가 '혹시 이 동네에 아동안전지킴이집이 있는 걸 알고 계세요?'라고 물었다. 아저씨는 '그게 뭐냐'고 내게 되물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아주머니에게도 같은 물음을 던졌지만,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음 날 여길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아동안전지킴이집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봤다. 잘 모르는 내용은 경찰에게 물어봤다. 아동안전지킴이집은 경찰이 아동 대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2008년에 도입한 정책으로, 아동이 위험 상황에 닥쳤을 때 구조 및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학교 인근의 편의점과 문방구, 약국, 세탁소 등을 주로 지정하는데 경찰서와 안전지킴이집 간 비상연락체계를 만들어 위급 상황 시 곧바로 연락해 출동할 수 있도록 구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 날 오후 4시쯤, 출입처에서 나와 해당 초등학교로 향했다. 아이들이 문방구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신분을 먼저 밝히고 '아동안전지킴이집'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여기 문방구에 간판이 걸려 있는 것은 알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고, 언제 어떻게 이용을 하는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다. 이 때문에 추가 취재를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경찰에 아동안전지킴이집 현황과 개수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여 받아본 뒤 또다시 현장 취재를 벌였다. 해당 학교 주변에는 5~6곳의 지킴이집이 있었는데, 태권도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도장에 다니는 아이들도 지킴이집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굣길에 하얀 도복을 입고 도장으로 걸어가던 한 학생에게 물으니 "우리 도장이 지킴이집이에요?"라고 내게 되물었다. 또 학교에서 이에 대해서 따로 교육이나 안내를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아이들을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킴이집이 운영되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이 잘 모르고 있어 제도 실효성이 우려됐다.


그래서 학교 주변의 지킴이집을 계속 돌아봤다. 지킴이집으로 지정돼 있는 편의점주는 "경찰관들이 순찰을 돌 때마다 업장에 방문해서 별 일이 있었는지를 묻고 간다"고 했다. 또 "비상연락망이 있어서, 아이들이 도움을 청하면 바로 경찰서에 연락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지킴이집으로 지정돼 있는 가게의 점주들이 가게를 운영해야 하는 만큼 자릴 비울 수 없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점주는 "처음에 지정된 이후 경찰서에 가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바빠서 교육 요청이 와도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편의점의 경우 24시간 운영구조로 되어 있어 시간대별로 근무자가 바뀌는데, 점주와는 다르게 종업원은 지킴이집 교육을 따로 받지 않아 이 같은 내용을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지킴이집으로 지정되어 있는 또 다른 가게의 업주는 "지정된 지는 오래됐는데, 보수를 받거나 그런 건 아니고 사실상 봉사 개념으로 하고 있다"며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으러 와 달라고 연락이 오는데 교육을 받으려면 가게를 비워놔야 해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취재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지킴이집으로 지정된 가게 점주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데다 아이들도 이 같은 내용을 잘 몰라 사실상 '전시 행정'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점주들이 일종의 '봉사' 개념으로 지킴이집 지정을 허락한 만큼, 경찰 입장에서도 교육을 강제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또 학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교육당국은 아동안전지킴이집과 관련하여 아이들이 인지하도록 교육을 벌이지 않고 있었다. 정책이 겉돌고 있는 것이다. 정책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경찰을 주도로 하여 교육당국과 행정당국이 서로 머리를 맞대 고민하면서 추진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것이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지킴이집이 줄고 있어 자칫하면 사장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수많은 가게에 아동안전지킴이집'이라는 간판이 내걸렸지만, 정말 아동을 지킬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정책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선 단순한 지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과 교육당국과의 협력체계 구축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동들의 안전한 등하교 환경 조성'이라는 좋은 취지로 운영이 되고 있는 만큼, 지킴이집이 정말 아이들이 위험할 때 지켜주고 보호해줄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아동안전지킴이집'으로 지정되어 있는 가게에 내걸린 간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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