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봄이 오면, 새살이 돋아나겠지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자극 이상의 무언가를 주었다. 그동안 당연히 행사해야 하는 '자기 결정권'이라는 것에 있어, 나 자신의 무지함과 우유부단함이 스스로 족쇄를 채워버렸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단순히 공감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참 많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시기에 관계없이 늘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찾을 것'을 당부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친구가 성우에게 묻는다. '넌 행복하니?' 하지만, 성우는 친구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난 행복해'라고 대답할 수 없다. 그러고선, 나는 현재의 나에게 물음을 던져본다. '넌 행복하니?' 나 역시 자신 있고 당당하게 '행복해'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부했지만, 표현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지만,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그로 인해 엄습해오는 불안감. 변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던 정체성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까지.
어쩌면 나 역시도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사회에 의해 살아지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퇴적물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는 듯한 무거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그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았던 것처럼. 나 역시도 그 희망을 가져보고 싶고, '나는 지금도 참 행복해'라고 말하고 싶다.
한 동안 나를 참 많이도 미워했었다.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익숙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었겠지만, '나란 녀석이 그럼 그렇지. 별 거 있겠어'의 연속이었으니,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다는 '자연치유력'이라는 것도 마치 내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러는 동안 무미건조한 마음에 생긴 딱지는 단단히도 굳어있었다. 전혀 떼어지지 않을 것처럼. 지금 이 계절이 지나고, 따듯한 봄이 찾아오면 꽁꽁 얼었던 지면이 녹고, 그 자리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자라듯, 마음의 딱지가 떼어지고 새살이 돋아날 것만 같은 것이 제대로 '아물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