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 다시금 바라보는 <택시운전사>
1980년 5월 광주는, 아직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우리 시대의 과제다.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이 같은 비극을 만든 원흉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같은 스스로를 가해자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국민 모두가 누군지 모두가 분명히 알고 있고,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지만, 그래도 완전한 해결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5·18 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에서 두 명의 외부인이 그날의 참상을 겪는 과정, 그리고 이를 알리는 과정을 다룬 드라마를 뛰어넘은 하나의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만섭이 운전하는 택시에 독일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관객들을 함께 태우고 그 날의 광주로 들어간다. 이 같은 접근법을 통해 관객들은 광주시민이 되는 셈이다. 영화는 광주로 들어갔을 초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만섭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 37년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모습을 투영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몽둥이에 맞아 죽어나가고, 심지어는 총살까지 당하는 광주시민들의 모습을 보는 만섭에게 부채감이 하나씩 쌓여나가게 되는데. ‘우리나라처럼 살기 좋은 곳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해 왔던 만섭에게 있어 광주는, 그 생각을 완전히 되돌리게 만드는 장소가 된다. 그저 지켜만 본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부채감 때문이다. 이 같은 부채감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위르겐 힌츠피터가 철저히 ‘외부인’의 시선으로 그 날의 광주를 카메라에 담았다면, 만섭은 광주시민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두 눈으로 당시의 참상을 그대로 관객들에게 알린다. 어찌 보면 만섭 역시 또 다른 저널리스트인 셈이다.
‘방관자’에서 비극에 뛰어드는 ‘관여자’가 되는 만섭의 모습을 통해 우리 역시 부채감을 조금씩 덜어낸다. 영화의 줄기는 아무도 몰랐던 5월의 광주에 들어가는 외신기자의 이야기이지만, 실상은 만섭의 변화의 모습을 그리는데 그 무게를 둔 것이다. 광주에서 철저한 방관자였던 만섭은 광주를 벗어나 순천에서,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는 왜곡된 보도를 보면서도 차마 실상을 말하지 않았던 죄책감과 손님인 위르겐 힌츠피터와의 약속을 어기고 혼자서 서울로 돌아가는 마음 한 구속에 있는 무거움,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딸과 소풍을 가자던 약속을 차마 지키지 못한 가장,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미안한 마음까지. 복잡한 감정을 겪는 과정에서 관여자로 바뀌어 간다.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서 급히 핸들을 돌려 광주로 되돌아갈 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뭉클한 마음을 느낀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났다가,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비극의 도시를 저버리지 않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는 만섭의 모습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 영화는.
긴장감과 극적인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을까. 만섭과 위르겐 힌츠피터가 택시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뜬금없이 카체이싱 장면이 담기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적 만듦새를 떠나 이 영화가 중요한 가치는 지닌 것은 철저히 외부인의 시선에서 1980년 5월의 광주를 바라보고, 방관자에서 그치는 게 아닌 관여자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그려낸 데다, 더하거나(카체이싱 씬은 뺀 나머지) 덜함 없이 있는 그대로를 알렸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화려한 휴가> <스카우트>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다룬 영화가 늘었다는 점만으로도 박수받을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