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끝 Apr 02. 2018

항공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터뷸런스를 극복하기 위해 '항덕'으로 거듭난 사연

섬에서, 나고 자라 하늘을 볼 기회가 유독 많았다. 그것도 지면에서 올려다보는 게 아닌, 상공에서 하늘과 같이 있었다. 그땐 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보다 즐거움이 앞섰다. 그래서 섬에서 난 것이 행운이라 생각했고, 행복했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냈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을 나는 게 즐거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이라서 어려운 것도 익숙해지게 되면 평범한 것처럼 느껴진다고들 하는데, 하늘을 날면 날수록 내가 떠 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조금씩 엄습해지기 시작한 셈이다. 이를테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항공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이착륙 시 손에 식은땀이 나는 건 예삿일인 데다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식은땀이 흐르면서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특히 재작년 나리타에서 대한항공 협동체를 타고 돌아오다 심한 난기류를 만나 이 같은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다. 그 이후, 절대 김해에서는 일본 노선을 다시는 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이 같은 의지는 지난여름 후쿠오카를 가게 되면서 1년 만에 깨져버렸다. 어쨌든 출도착 공항에 윈드시어가 발효되는 날에는, 비행기를 타기가 싫어질 정도다. 이런 어려움을 안고 있는 가운데 내가 왜 그런 지를 생각해보니, 나이를 먹어가면서 비행에 대한 실체적 진실에 점점 가까워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그동안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비행기가 나는 원리는 물론 조종사들이 항공기를 조종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나, 터뷸런스나 윈드시어가 순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 것이다. 더 정확한 정보에 목이 말랐고, 항공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곤 하거나 관련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이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공항에 가면 설렘이 가득하면서도, 비행을 하는 건 아직까지 여전한 스트레스다. 공항에 도착해 딱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그 순간까지 가장 즐겁다. 내 나름대로 비행 스트레스 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모색한 방안은 ‘정면승부’였다. 유인구로 피해 가는 승부보다는, 95마일이 넘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 이겨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항덕'을 자처해 대놓고 항공사고 수사대 영상을 챙겨보거나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가 하면 “비행기 사고가 날 확률보다, 비행기를 타러 가다 교통사고가 날 확률이 수백 배, 수천 배 더 높다. 비행기는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다.”라는 현직 기장의 말을 방패 삼아, 비행 자체를 즐기려 하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서 가급적이면 단거리를 이동할 때에도 협동체가 아닌, 광동체를 타려고 노력한다. 이 때문에 최근 몇 개월간 김포~제주 노선은 항상 광동체 기재
만을 고집해 왔다. 사실, 아직까지 유럽에 갈 때(A380 탑승) 빼고는 기내에서 잠을 청했던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A380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같은 비행 스트레스 장애가 트라우마로 여겨지지 않도록, 나는 이렇게 고민을 거듭하며 ‘안정’으로 스스로를 채운다.


사진=지난겨울 구입한 아시아나항공 A350 옥스포드 브릭의 모습.

매거진의 이전글 잘 쓰지 못해 많이 읽는 요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