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했다. 어렵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기회는 온전히 잡는 사람의 것이어서다. 그래서 마음이 시키는 선택을 했다. 조금도 고민할 이유가 없었고,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을 했고, 분명 더 나은 결정이라고 확신했다. 선택에 따라 파생하는 것들을 짊어지는 것은 타인이 아닌, 나이다. 결국 내 몫이다.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린 뒤, 불현듯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 한편에 고이 잠자고 있던, 여정이 주는 감각들을 되살리고 싶었다.
무작정 백팩과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아무런 계획 없이 여행지로 몸을 옮겼다. 여행할 때마다 즐겨 찾던 카페에서 맛있는 라테와 치즈케이크를 곁들이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라테가 선사하는 풍부한 크레마의 부드러움과 적당히 달콤한 케이크가 어우러지며 즐거움을 증폭시켰다.
그 순간을 남겨두고 싶었다. 가방에서 펜을 꺼내어 영수증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내려 갔다. 네모난 작은 종이에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선택을 했다. 더 행복한 날들을 위해. 일상 속 늘 빛나는 날들이 가득할 거라 믿으며'라고 꾹꾹 눌러썼다. 마음이 시켜서 내린 결정에, 스스로 온기를 불어넣고 위로와 위안을 건넨 셈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서 열렸던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와 다른 시선의 사울 레이터전을 여행지에서 마주했다. 전시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다 보고 나선 같은 주제를 놓고서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도 달라지게 된다는 걸 또다시 절감하게 됐다. 늘 글감이 없다고 핑계를 대던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한심했다. 그리고 반성했다.
먼 곳이 아니어도, 또 긴 여정이 아니더라도 모든 시간 속에서 사색하고, 생각하며, 반추하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기폭제로 작용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오히려 충분했다. 김훈 작가는 '지나온 길들이 아직도 거기에 그렇게 뻗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그래서 모든 길은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라고 했다. 나 역시 내 앞에 놓인, 새로운 길을 올곧게 걸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