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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Feb 27. 2023

가장 소중한 우리 세 꼬맹이

훈이가 다쳤다

출근할 사람도 퇴근할 사람도 없는 우리 집은 느지막이 아침을 먹습니다. 남편과 마주 앉아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며칠 전 꽂아 놓은 활짝 핀 프리지어꽃을 보며 봄이 성큼 다가왔구나 싶었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침부터 아들, 딸에게서 전화가 오면 일단 놀라고 걱정이 앞섭니다. 아니나 다를까 훈이가 다쳐서 병원에 가야 하니 빨리 차를 가지오라네요. 내가 세상에 태어나 잘한 것 중에 하나가 운전인데, 이럴 때엔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세수는 패스, 양치만 하고 부랴부랴 큰길 건너 아파트에 살고 있는 딸네달려갔습니다. 다행히 근처에 정형외과가 있어 서둘러 갔는데 이런~~ 화상환자만 본다네요. 다시 길 건너에 있는 외과로 가야 했습니다. 여기도 안된다 하면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 하나 싶었는데, 대기환자가 없어 바로 치료를 해 주셨습니다. 상처가 그리 깊지 않아 소독만 하고 꿰매지는 않아도 된다 하니, 그때서야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었습니다.


오늘 훈이가 다치게 된 발단은 나로부터 시작되었습니. 우리 아파트 입주민 카페에서는 가끔 장난감 나눔이 올라옵니다. 세 꼬맹이의 할머니인 나는 꼬맹이들 연령대에 적당하겠다 싶으면, 잽싸게 댓글을 달고 무료득템을 합니.  물론 명절이나 생일등에 원하는 장난감이나 옷 등 선물을 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 집집마다 아이들이 하나, 둘이다 보니  나눔을 받은 장난감들은 새것이나 다름없어  좋은 문화라고 생각합니.


그래서 미니 당구대도 가져다준 것인데 그 당구큐대를 가지고 놀다가 다쳤다는 것입니다. 큐대 끝을 싸주는 고무가 빠져버려 드러난 거친 나무에 허벅지를 쓸려버려 상처가 난 것입니다. 얼마나 아프고 놀랐을까요. 더구나 오늘 오후에 유치원 졸업식까지 있는데 당구 큐대 때문에 다쳤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은, 그런 거 가져다줘서 다치게 했다며 표정 곱지 않습니다. 딸은 내가 빠진 꼭지를 끼워 놓았어야 했는데 깜박했다며 아쉬워했고요. 어쨌든 미니 당구대는 치우기로 했고, 둘째 손자는 상처가 깊지 않아 졸업식에 무사히 참석하게 되어 천만다행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인원제한으로 손자 졸업식엔 참석하지 못했지만, 씩씩하게 율동을 하는 동영상과 사진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첫 번째 손자 윤이가 태어나던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할머니가 되어 부끄럽기도 했지만, 우린 이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드렸기 때문에 더욱 특별했습니다. 딸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내가 육아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퇴직한 남편도움도 받을 수 있어 별 어려움이 없을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 본 지 너무 오래되었고, 학구열이 남아있던 때라 좀 더 준비된 할머니가 되고자 돌보미교육까지 받았습니다. 잠시 돌보미활동을 하면서 육아에 익숙해지는 동안 출산일이 다가왔는데, 하필 12월 말일이 출산예정일이랍니다. 하루 차이로 인해 한 살을 그냥 먹어야 하는 상황, 딸과 나는 자연분만을 목표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출산예정일 일주일 전부터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고 편히 쉬도록 했습니다.  다행히 윤이가 잘 기다려 주었고 31일 저녁부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계속 아파트 정원을 산책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건강한 출산을 위해 쉬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1월 3일 건강하고 튼튼한 손자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꽉 채운 10살로 3학년이 된 손자는, 반에서 2학년때까지 키가 가장 컸습니다. (딸은 산부인과 관련 종사자였음)


그리고 2년 후 딸은 둘째 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시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지면서 나 또한 건강이 안 좋아지자, 딸은 사표를 내고 둘째를 낳았습니다. 둘째 낳고 육아휴직까지 쓰고 그만둬도 되건만, 그러고 싶지 않다고 미련 없이 8년이나 다닌 첫 직장을 나왔습니다. 내가 좀 더 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늘 있었는데, 이제야 그랬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집니다.  공백기간이 있었음에도 당당히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여 발령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 딸이 너무 자랑스럽습니. 물론 항상 형아를 이기고 싶어 하는 이 글의 주인공, 귀염둥이 이도 잘 자라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형제가 얼마나 사이좋게 잘 노는지 볼 때마다 쑥쑥 자라는 거 같고, 너무 빨리 커서 아쉽기도 합니다. 거기에 우리 손녀까지 합세하게 되면 더욱 신이 납니다. 두오빠가 동생 말이라면 다 들어주고, 업어주고 사랑이 넘칩니다. 아쉽지만 아들네는 멀리 살고 있어 거의 매일 아침 어린이집 등원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납니다. 세상에 둘도 없이 귀한 손녀는 정말 정말 어렵게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며느리는 임신을 해서 낳는 날까지 입덧으로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더구나 무리하게 자연분만까지 하게 되면서 출산 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건강하게 회사에 잘 다니고 있지만, 출산 시 이천에 살았던 며느리가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일주일에  번씩 손녀를 돌봐주러 다녔습니다. 항상  주변을 맴돌며 장을 보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정도의 거리 운전자가 손녀 덕분에 장거리 운전에도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나에게 와준 소중한 보물들, 그래서 내가 사회를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며 했던 일들을 정리하는데 크게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10년 이상 해왔던 상담 봉사그만두면서,  내게 온 이 소중한 보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모든 시간과 정성을 내어주기로 했습니. 언제든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가서 도움을 줄 수 있는 할머니가 되자고. 생각만 해도 눈물 나도록 고맙고 자랑스러운 내 아들과 딸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될 수 있는 든든한 울트라 슈퍼빽되자고.

2023. 2. 21일


가끔은 다양한 에피소드로 할머니와 손주들의 성장기를 담은 이야기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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