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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ug 10. 2023

발령 첫날의 대소동

딸과 나의 새로운 출발

합격 13개월 만에 임용식을 마치고 발령지로 출근을 했습니다. 첫날부터 난리도 아닙니다. 갑자기 발령이 나는 바람에 꼬여버린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임용식이 있던 전날부터 뭔가 불안한 조짐이 있었습니. 그래도 힘들게 공부한 보람으로 공무원이 되었으니 마음껏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임용식에 무려 7명이나 되는 가족이 참석했지만, 차마 좁은 단상에는 다 올라가지 못하고, 당사자인 딸과 사위, 손자 과 나만 올라가고, 내편과 휴가까지 낸 아들과 손녀는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80여 명이 한꺼번에 임용식을 하다 보니 꽤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사이 손녀가 열이 나기 시작해, 제대로 사진도 못 찍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을 다녀왔음에도 손녀는 밤새 열이 났고, 아들 역시 오르는 열을 잡아끌어 내리느라 밤잠을 설쳤습니다. 아들은 손녀가 깰까 봐 아침밥도 못 먹고 출근하고, 편은 발령장을 받으러 구청으로 가는 딸을 데려다주면서 방학중인 손자들을 우리 집에 떨궈주고 가버렸습니다. 갑작스레 혼자서 3명의 손주들을 돌봐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더구나 열이  38~39도를 오르내리는 손녀를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는데, 손자들은 심심하다고 난리고, 그야말로 혼이 나가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우유와  간식을 먹은 손자들을, 딸을 데려다주고 편이 다시 태권도 학원에 데려다주고 왔습니다.


그 사이에 나는 점심준비를 했습니다. 서둘러 돈가스를 만들어 튀기고, 급한 대로 스크램블에그도 한 접시  만들어서 상을 차렸습니다. 전날 만든 멸치볶음과 무나물도 꺼내 놓으니 태권도 방학특별활동인 발야구를 하고 온 손자들이 아주 맛나게 먹어줍니다. 그 사이에 오전 내내 수시로 열을 재며, 냉찜질을 한 덕에 열이 내린 손녀딸 밥을 먹였습니다. 몇 수저 뜨다 작은손자 반찬 올려주고, 손녀에게 밥을 먹이다 보니 정작 나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습니다. 뒤늦게 몇 수저 뜨려니 먹히지가 않습니다. 이제 시작인데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다니 앞으로 어이...




짧은 오전시간은 어찌어찌 보냈다지만 이제 오후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요. 편과 공놀이도 하고, 애니메이션도 틀어주고, 그래도 유튜브를 보고 싶어 하는 큰손자와 살벌한(?) 대치를 하며 그림 그리기까지 하다, 먼저 저녁을 먹여 남편이  태권도 학원에 데려다주고 왔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이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나니 몸상태가 후들후들 내일이 더 걱정이 됩니다.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임에도 첫날부터 이렇게 처참히 무너지다니, 오늘 이 시간 글을 쓰며 재정비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첫 출근한 딸아이만큼이야 하겠나 싶었습니다. 일손을 놓은 지 8년이나 지나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힘들다는 시험을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여 간호직 공무원이 되었습니. 그러하니 얼마나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을지 그것이 더 염려스럽습니다.


다행히 본인이 맡아야 할 업무에 대해 잘 받아들이려 하는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통장시절 동사무소 직원들과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통장님! 제가 이러려고 죽어라 공부해서 공무원이 된 것이 아니었어요"하던 직원들 모습이 떠오릅다. 위에서 하라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동원되어도 무조건 해야 되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동민들을 구민들을 시민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하는 공무원이니 어쩌겠어요. 뜬금없이 간호직공무원이건만 관용전기자동차관리를 해야 한다는데도 그러려니 하는 딸을 보니 무엇이든 잘 해낼 것 같습니다. 이 엄마도 그런 딸을 보니 하나씩 적응해 나가손자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힘이 생깁니다. 단지 도 나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요.




앞으로 그야말로 좌충우돌 손자들과의 성장기를 그려가같습니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뿐인 캘리도 못 가고, 청소하랴, 삼시세끼 식사준비에 간식까지 챙기며 경황없이 보냈지만, 아들이 반차를 내고 열이 나는 손녀를 데리고 병원을 다녀와 주었기에 그나마 수월했습니. 내편 역시 아침부터 이쪽저쪽으로 데려다주느라 고생했고, 돌려놓고 널지도 못한 빨래를 널어주고, 손자들과도 놀아주느라 고단한 하루였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 글 쓰는 시간도 읽을 시간도 여의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좀 적응이 되고, 방학이 끝나서 학교에 가고 나면, 여느 학부님들처럼 차 한잔의 여유는 누릴 수 있으려나요. 단 며칠 만에 우리 아이들 키울 때와는 전혀 다른 육아 현실에 혼쭐 나고 있지만, 이도 잘해나갈 것입니다. 아니 잘 해내야 합니다. 나처럼 집에서 밥하고 빨래나 하라고 너를 그렇게 힘들게 공부시킨 것이 아니라며, 너에 일을 하라고 닦달한 장본인이 나였으니 자업자득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막상 일을 하려니 제대로 된 자격증 하나 없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도, 할만한 일도 없었습니다. 내 딸만큼은 나와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금은 모질게 공부를 시켰기에  때때로 미안하기도 했지만, 본인 일을 찾아 간 딸이 고맙고도 대견합니. 앞으로 더 힘들고 별의별 일들이 속출하겠지만 딸과 나는 강합니다. 찾아가는 방문간호택하여 동사무소로 발령이 난 우리 딸,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진심을 담아 잘해나갈 것입니다. 이 엄마도 두 손자들과 또 다른 삶을 다부지게  꾸려것이니까요.

우리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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