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하니 갈잎사이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한적한 갈대밭 사이로 난 데크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긴 연휴의 마지막날 오고 가고 부산스러웠던 일상을 뒤로하고, 느긋함으로 분주했던 마음도 내려놓으며 바스락 거리는 갈대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파랗고 높은 가을하늘만큼이나 키도 훌쩍 자란 갈대들이 제 소명을 다한 듯 초록잎들은 가을색으로 물들어 가고, 피어난 갈대마저 계절의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힘없이 휘어져만 가네요.
봄이면 삐죽삐죽 돋아나던 싹들이 여름내 싱그러운 푸르름으로 몸통을 키우고 길이로 자라나며초록빛 갈대밭으로 많은 이들에 눈길을 모으더니, 가을엔 제 소임을 다한 양땅속으로 몸을 낮추며 긴 겨울에 시간 속으로 가려합니다. 집 앞 개울가에는 매년 갈대들이 피어나고 가을빛이 물들어갈 때쯤이면 갈대들을 뽑아 물에 삶아 말려서 솜씨 좋게 엮어 고운 빗자루를 만들어 주시곤 하셨지요.
곱디고운 갈대빗자루는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잘 쓸리고 몽당비가 될 때까지 튼튼하여 아버지에 그런 솜씨가 자랑스럽기만 했지요.아버지의 손바닥엔 옹이처럼 단단해진 굳은살이 박이고 그 어느 것도 못해내는 일이 없으셨으니 새벽부터 밤까지 사계절 내내 일 년 열두 달 쉬일날이 없으셨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도 긴긴 겨울밤에는 돗자리를 만드시고. 가마니를 짜시며 그 희생에 길, 인내의 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흰구름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파아란 하늘가에는 아버지에 옅은 미소가 자리하고, 손잡은 엄마의 행복한 미소도 구름 속에 가리어집니다. 그리움에 바다는 흘러가는 구름 따라 끝 간 데 없이 퍼져가고, 유년의 시절 속에서나마 희미하게 잡히지 않는 추억으로 만나볼 뿐입니다. 가는 곳마다 보이는 곳마다 떠오르는 당신에 숨결, 이제 그만 놓아야 한다지만 순명처럼 지고 가야 하는 봇짐인 양 떨치지 못함에 다시 눈시울이 붉어질 뿐입니다.
이제 가을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일처럼 느껴지지만 이른 봄날에 가셨기에 겨우 7개월이 지났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엄마의 모습이 옅어져 가기에 그때 쓴 글들을 열어 보았습니다. 좀 더 잘해드릴 것을 그저 안타까워만 했던 자신에게 화도 내보고 후회도 해봅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일임에도 지금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정신을 가다듬으며 읽던 글을 내려놓습니다.시간이 더 필요한가 봅니다.
갈대밭에 가면 늘 떠오르는 이 노래에 쓸쓸한 마음을 올려놓으며 긴 연휴를 마무리해 봅니다. 또 새로운 날들을 만나며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