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가에 붉은빛 단풍으로 덧칠을 하며 짙어져만 가는 가을빛을 산자락에흩뿌려댑니다.작년보다 조금 이른 탓에 온통 붉게 타는 숲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그루의 단풍잎이 마중 나와 주어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화담숲은 음식물 반입금지 인지라 입장 전에 야외탁자에 앉아 따사로운 가을햇살 속에서 샌드위치와 간식을 먹고 몸도 마음도 가볍게 본격적으로 걷기에 나섰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늘은 추운 감마저 있었지만 걷다 보니 어느새 하나 둘 겉옷을 벗어 들고 가네요.
가볍게 아침도 먹었겠다. 팔락팔락거리며 지그재그로 된 관람길을 따라 걷는 길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습니다. 혼자 온 사람, 7~8명이 부산스럽게 온 사람들, 나이 드신 부모님 손잡고 온 사람, 아이들과 손잡고 온 사람, 힘겹게 유모차를 밀며 온 사람, 하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두 사림이 있습니다. 못 본 척하려 해도 같이 출발했으니 자꾸만 만나게 되고 마음이 쓰였습니다.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줄까 싶었지만 그분들께 어쩌면 그런 행위마저 방해가 될까 싶어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다지 눈썰미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40대 정도 되려나요. 휠체어에 앉아있는 남편을 밀며 연신 미소를 짓고, 가는 곳마다 멈춰 서서 남편이 아내를 찍어주고, 아내는 남편을 찍어주며 정답게 찍기 놀이가 성업 중입니다. 어느 부부보다 정이 넘치고 애정이 가득한 눈길로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찍기 놀이에 동참했습니다. 가파르긴 하지만 불편한 사람도 쉬엄쉬엄 갈 수 있도록 그늘진 곳에 벤치도 많고, 심어진 나무들만으로 부족한 듯 가을꽃들로 단장하느라 골목골목이 분주합니다.
한참을 오르니 숨이 헐떡거리며 매달리듯 손을 잡고 갈 수밖에요. 맨 위쪽에 다다라서야 벤치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 온 따뜻한 보리차로 커피도 타서 마시고, 쫄깃한 젤리로 당을 충전하니 또 힘이 솟아나네요. 더욱 가까워진 파란 하늘로 둘이 손잡고 사뿐사뿐 걸어가면 금세 닿을 듯싶습니다(토끼하고 쿵더쿵쿵더쿵 방아라도 찧고 와야 할까봐요ㅎ).이제 내리막길입니다. 작년에는 10월 26일에 왔었기에 온통 붉은빛을담느라 지체되는 인파로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며칠 이르다고 초록빛이 더 많은지라 상큼한 숲 속에 공기와 맑은 빛들이 넘실대는 자작나무숲에 만족해하기로 했습니다.
오를 때는 힘겨워 못내 말조차 못 했었는지 내리막길에서는 여기저기서 아구구, 허리야! 다리야! 소리가 들리곤 하네요. 비록 줄어든 무게가 쉬이 불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아직은 성성한 다리로 이렇게 햇살 좋은 날 손잡고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 순간입니다. 열 가지 모두를 다 가지고 싶다면 그것은 욕심이겠지요. 아직은 쓸만한 것들이 더 많으니 있는 것에 만족해하고 거기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행을 가고, 쇼핑을 가고, 영화를 보러 가고, 마트를 가도 같이 갑니다. 물론친구나 지인들과 같이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천연기념물이 될지도 모른다며 놀려대곤 합니다.
글쎄요!
처음엔 다들 그렇게 다니는 줄 알아서 그렇게 다녔고, 다니다 보니 편하거나 도움이 되는 점도 많아지니 계속 다니고 있습니다(적당히 부려먹으면서ㅎ). 더구나 퇴직하고 둘이 외출하는 날들이 많다 보니 번거롭게 약속할 필요도 없이 시간 되면 맛있는 것도 먹고, 산책도 하고, 여행도 하고, 영화도보러 다니다 보니 그럴 수밖에요.
사는 게 별게 있나요. 큰 영화 바라지 않고, 가끔은 못마땅하고 속이 터져도 한 발씩 양보하고, 이해하면서 손잡고 걸어가야지 어쩌겠어요. 이 나이에 안 맞는다고 티격태격 다투며 꼴 보기 싫다고 친구 찾아 떠나봐야 결국 수족 못쓰고 아프기라도 하면 정작 돌봐줄 사람은 가족뿐인걸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내려오다 보니 벌써 출구가 보이네요. 오늘도 추위를 타서 늘 차가운 내손을 따스한 손으로 감싸주는 곁님에 온기로 행복한 하루를 채웠습니다. 이제 마지막 가을빛으로 온 산을 뒤덮으며 가을도 떠나가겠지요. 차가운 겨울이 오기 전에 누구든 손잡고 그 예쁜 가을 속으로 걸어가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