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날 며칠을 설명절 준비로 고단한 시간을보냈습니다. 어떻게 준비해서 먹고 치웠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틈나는 대로 시장을 다녀오고 밤으로 음식준비를 하고 전쟁 같은 설명절을 보내고 나니 온몸이 너덜너덜하고 입술에 물집이 잡혔습니다. 그래도 식구들이 맛있게 먹어주고 훌쩍 자란 사촌들 간에 서로 세배를 하며 우애 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자니 울컥하더군요.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모두 행복한 시간들이었으면 좋겠지만 한 해 한 해 제 몸이 따라주지를 못합니다.
이럴 때는 내 몸에게도 휴식을 주어야겠지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떠나야지요.
돌봐주는 손자들 때문에 긴 시간을 낼 수 없기에 1박 2일 코스로 일정을 잡고 출발했습니다. 하필 다음날은 종일 비가 내린다 하니 아침 일찍 출발하여 하루를 온통 즐기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3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한탄강 물윗길 태봉매표소, 입장권을 구매하니 절반은 철원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줍니다. 그 상품권으로는 트레킹 하는 동안 중간중간에 있는 간이매점에서 간식을 사 먹어도 되지만 다시 돌아오는 택시비로 사용했습니다(평일에는 셔틀버스가 운영되지 않음). 점심을 철원오대쌀로 지은 한정식을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아무리 폴짝폴짝거리며 뛰어도 배가 꺼지지 않았거든요.
<철원 연사랑> <포천 쌈도둑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지 혹여 물길 위라서 추울까 싶어 단단히 입고 간 옷들이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짐이 되었습니다. 훌러덩 벗어서 허리에 매고 촐랑촐랑 대는 물윗길을 따라 걷는 동안 어찌나 신이 나던지요. 어린 날에 희야를 소환하며 마음껏 달리고 뛰며 또 얼마나 웃었는지요. 봄햇살이 곱게 쏟아지는 그 길 위로 지나는 모든 분들을 붙잡고 "shall we dance(함께 춤 출래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설명절의 긴 연휴도 끝난 평일이어서인지 오가는 분들도 많지 않고, 파란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다니고, 이곳이 외국의 한 협곡인지 주상절리 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철원 한탄강은 2020년 7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만큼 멋진 비경으로 우리를 맞아주었고 지나는 곳마다 감탄을 자아내며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한탄강 물윗길 운영기간은 지난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이며 직탕폭포(태봉매표소)에서 순담계곡까지 8.5킬로입니다(팸플릿 참조). 걷는 시간은 2시간 정도 걸렸어요. 물윗길을 걷기도 하고, 돌길도 있고, 정성껏 온마음을 다해 쌓은 아름다운 돌탑들도 무수히 만날 수 있답니다. 지난해 모임에서 십여 명이 떠들썩하게 주상절리길은 다녀왔지만 물윗길은 처음이라서 신기하고 물가운데 부표처럼 떠 있는 길을 걷는 일은 무척이나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물길 위에, 저 파란 하늘가에 마음을 두리둥실 띄우며 순담계곡까지 걷기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출발했던 태봉매표소로 돌아왔지요. 오랜만에 많이 걸어서인지 차를 타니 피곤이 몰려와 산정호수 앞에위치한숙소에 체크인을 했습니다. 그냥 쉬었으면 딱 좋겠지만 산정호수가 코앞인데 그럴 수야 없지요. 간식도 든든히 먹었겠다 저녁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산길을 따라 들어가니 드넓은 산정호수가 맞아줍니다. 엄마품처럼 따스해지는 안온한 풍경,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데크길을 따라 고요히 걷노라니 그동안의 피로들이 어느새 어둠이 내리는 호숫가로 스르르 미끄러져 내리는 듯합니다.
이제 또 살아가야지요. 힘내서 씩씩하게 살아가야지요. 맏며느리에 길은 늘 고달파도 또 이렇게 충전하며 새날들을 맞이하렵니다. 그래서 여행은 제게 늘 위안을 주고 다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줍니다. 아무리 고단하고 버거운 날들일 지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온 얼굴에 미소 가득 담으며 나에 길을 가렵니다. 그런 내가 참 멋지지 않나요. 한 번뿐인 인생 멋지게 살아야지요. 아직은 팔다리 성성하니 뭔들 못하겠어요.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오늘에 여행도 언젠가는 꺼내보고 싶은 또 하나의 추억으로 저장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