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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Oct 31. 2024

60대의 배낭여행

KTX 타고,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걸어서. 아차! 택시도 탔어요

 10월 초 연재글을 마무리하고 다녀온 여행 후기입니다

 알람 없이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조금은 견딜만하다. 부지런히 작은 배낭에 짐을 꾸리고 간식도 챙겼다. 누룽지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탔다. 처음 도전해 보는 배낭여행. 갑자기 예고도 없이 비까지 쏟아졌다. 자고로 배낭여행은 고생길이라더니 출발 전부터 장대비까지 내리고 심상치가 않다. 속을 뚫고 KTX에 몸을 실었다. 기차여행에 빠질 수 없는 삶은 계란과 사이다.... 사이다 대신 가져온 요구르트와 계란을 먹고, 키위와 자두를 꼭꼭 씹어먹었다. 마침 주문한 책도 들고 와서 읽으며 기차여행의 묘미를 한껏 즐겼다.


 어떻게 떠나온 여행인데 할 건 다 해보아야 한다. 어제 아침만 해도 기차표를 취소해하나 망설였었다. 갑자기 뭘 먹고 체했는지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난리가 났다. 가만히 있어도 지구는 돈다지만 돌아도 너무 빨리 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한의원에 갔다. 침을 맞고 약을 받아와서 먹으며 하루종일 끙끙 앓았다. 오래전부터 더 늦기 전에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숙소를 예약하고 KTX열차표까지 예매했는데 체하다니 그래도 취소할 수 없었다. 숙소를 취소하게 되면 앞으로 4개월간 이용할 수 없는 페널티까지 주어진다. 그러하니 어떻게든 나아서 가야 했다.


 그렇게 떠나온 1박 2일 부산여행. 비록 근사하게 설레며 시작은 못했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고 믿고 싶었다. 세 번째 오는 부산은 맑은 햇살과 파란 하늘로 반겨주었다. 완전 기분 최고다. 바로 이어진 전철을 타고 또 갈아타고 부산의 꽃 해운대에 도착했다. 부산에 왔으니 밀면을 먹어줘야 한대나 뭐래나. 그렇다면 내속이야 어떠하든지 간에 일단 먹어줘야 한다. 밀면은 밀가루로 만든 냉면과 같은 것이라는데  물밀면 대자와 소자, 공깃밥이 없다 하여 햇반을 시켰다.

생각보다 맛있다. 그리 맵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간이 심심한 듯하면서도 짜지 않고 괜찮다. 면도 국수와 냉면 그 어딘가의 사이 질감으로 딱 적당하다. 소자임에도 양이 많아 덜어주고 햇반으로 속을 달래주며 먹고 나니 종일 든든했다. 역시 부산밀면은 진리다.




 배를 채웠으니 오늘의 일정을 시작해 볼까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미리 예약까지 해 놓은 해변열차를 타기 위해 길을 찾아 나섰다. 골목길을 찾아 헤매다 인파들을 따라가다 보니 승강장이 그곳에 있었다. 조금은 더운 날씨지만 해변열차는 파도가 넘실대는 푸르른 바다를 감싸 안으며 궤도를 따라 바람을 가른다. 잠시 중간에 내려 산책도 하며 부산해변의 오후를 만끽했다. 다음 행선지는 해동용궁사로 노선이 마땅치 않아 택시를 타기로 했다. 남편이 택시어플을 찾는 사이 목을 길게 빼고 있는 내 앞에 택시가 턱 하니 다가왔다. 역시 부산은 친절하고 좋은 도시다.


 택시에서 내리자 찌는 듯한 더위가 훅하니 맞아주었다. 우와 더워도 무지 덥다. 시원할 것 같은 바다를 안고 있지만 그와는 무관한 듯 더위를 타는 칠십이 되어가는 남편은 5킬로의 배낭을 종일 메고 다닌 탓에 흐르는 땀과 함께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도 결혼한 딸과 함께 10여 년 전에 왔을 적에 아들하나 점지해 주십사 하고 쓰다듬었던 곳을 지나며 우린 웃을 수 있었다. 열 살이 된 우리 윤이가 그 기도덕에 태어났으니 효험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ㅎ  헉헉대며 오르내리다 다시 입구까지 올라와 여행은 역시 간식이지. 오동통한 부산어묵을 먹으며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도 부산스러운 부산을 마음껏 음미했다.




 버스를 타고 숙소까지 가려면 갈아타기도 해야 한다는데 택시를 타고 싶었다. 다리도 아프고 온몸이 후들후들 피곤하다. 택시비가 만원 정도 나온대서 탔더니 막힌다며 돌고 돌아 만칠천 원이 나왔다. 배낭여행의 추억이 하나 더 얹어졌다. 체크인을 하고 나니 저녁시간이다. 밥이고 뭣이고 그냥 쉬고 싶지만 같이 굶게는 할 수 없어 작은 배낭마저 벗어놓고 길을 나섰다. 저녁도 저녁이지만 숙소 옆이 동백섬이니 안 돌아볼 수 없다. 마침 공사 중인 곳도 있어서 둘레길만 산책으로 마무리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맛집을 찾아 나섰다.


 점심은 면을 먹었으니 저녁은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따끈한 미역국정찬집으로 정했다. 조개미역국과 소고기미역국을 주문했다.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음에도 뚝배기에 푸짐하게 담긴 미역국에서 수저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 이럴 때는 소식좌인 것이 한스럽다. 어쩌다 씹히는 가리비가 쫀득하니 진짜 진짜 맛있다. 국물맛은 왜 이리 고소하니 맛이 있는지 그 맛은 먹어봐야 안다. 예전에 먹었던 미역국정찬들과는 사뭇 다르게 찐하니 감칠맛이 끝내준다. 반찬들도 맛있어서 거의 다 먹었다. 물론 미역국은 양이 너무 많아서 절반밖에 못 먹은 것이 너무 아쉽다.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광안대교가 밤새워 반짝이며 불꽃놀이를 하는 줄도 모르고 푹 잤다. 이제 우아하게 리조트조식 좀 먹으러 가볼까나.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다. 기껏 해봐야 샐러드에 빵 한 조각이면 충분할 텐데 요것 저것 야금야금 많이도 담아왔다. 그때 옆테이블에서 단아하신 어르신 한분께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어쩌다 보니 K할머니(나 역시 손주가 셋인 할머니 이므로)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70대이신 어르신께서는 코레일 해랑열차 전국일주 2박 3일 여행 중이시란다. 효도여행으로 자식들이 광클을 해야만 예약이 가능하며 기차는 총 8냥으로 6냥에 50여 명이 함께 여행하신다니 놀라웠다.


 일행 중에는 미국에서 오신 분들도 계시는데 맨 먼저 한국에 와서 들른 곳이 경동시장으로 번데기를 사 오셨다고 한다.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등으로 젊은 시절의 추억을 찾아가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뭉클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러한 따스한 이야기들이 어느 멋진 풍경보다도 좋다. 칠십 대의 할머니와 80대의 할아버지께서 다정스럽게 기차여행을 하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분들의 여행이 오래도록 행복한 기억으로 남겨지기를 바라본다.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송도행 직행버스를 타기 위해 10분 정도를 걸었다. 해운대 끝에서 끝으로 가는 버스는 평일이라 그런지 40분 정도로 비교적 빠른 시간에 도착했다. 또 케이블카승강장까지 10여분을 걸었다. 세 번째 여행이지만 송도케이블카는 처음이다. 송도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해안가의 풍경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케이블카 건너편에는 송도용궁구름다리가 있다. 천 원의 입장료를 내고 안전을 위해 덧신을 신어야 한다.  파란 가을하늘과 어우러져 더없이 맑은 부산의 계절은 나를 충분히 설레게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국제시장을 갔다. 예전에 먹었던 씨앗호떡을 사려하니 줄이 길다.  대부분 외국사람이었고 재미있는 것은 나도 부산국제시장에서는 대한외국인이 되어 줄을 서서 씨앗호떡을 샀다는 것이다.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충무김밥과 튀김, 어묵등을 사서 먹었다. 하루종일 속이 더부룩했다. 산책 겸 용두산공원을 찾아 나섰다. 에스컬레이트로 이어진 용두산공원은 한적하니 숲이 우거져 산책코스로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곳이었다. 꽃무릇이 제계절을 만나 함초롬이 피어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하루종일 쏘다녔음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시간은 8시 정도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걸어서 가까운 영도다리를 찾아갔다. 가는 도중에 유일하게 감초와 백출 한약재를 샀다. 다시 돌아와 지친 몸을 달래려 롯데백화점 옥상정원에 있는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하루를 정리했다. 이제 더 이상 돌아다닐 기운도 없다. 저녁도 이곳에서 대충 해결하기로 했다. 초밥집에서 간단하게 초밥세트를 먹고 전철을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어스름하니 부산에도 밤이 내려앉았다. 얼른 기차에 몸을 싣고 자고 싶다. 어제도 오늘도 2만 보를 걸었다. 완전 녹초가 되었다. 남편이야 매일 4~5시간씩 운동한다지만 고작 걸어봐야 5천 보도 안 되던 사람이 2만 보라니 초과도 심하게 초과했다.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ㅡ생택쥐페리ㅡ


그래서 배낭만 둘러메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천근만근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너무 무리한 탓인지 2~3일을 대차게 앓아누웠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골목골목을 누비며 걸어서가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택시와 버스, 전철을 타며 여행객이 되어 걷는 길이 새로웠고,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아 설레기도 했다. 영도다리 인근 약초상점에서 사 온 감초와 백출을 푸우욱 우려낸 차를 마시며 위장에 좋은 거라며 약초를 넉넉하게 담아주신 인심후했던 어르신이 생각난다. 부지런히 끓여 마시고 좋아지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친절했던 부산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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