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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Oct 28. 2023

어느 하루

괜찮다, 괜찮다

문득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가끔 타인에 일상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매일 같은 날 같으면서도 모두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매일의 풍경이 다르니 보는 느낌도 다르고, 온도가 다르니 옷깃을 여미는 정도도 다르고...... 매일이 아주 똑같은 날들이라면 어딘지 모르게 지루해 보일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남들이 보기에는 그날이 그날일 것 같지만 동선만 비슷할 뿐 매일매일 에피소드가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다. 그리하여 오늘 나의 하루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님들 하루는 어떠실런지요?


새벽에 잠이 깨었다. 속이 타는 듯 뻐근하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대학병원에서 시술을 하고 난 뒤로는 이 정도로 불편한 적은 없었는데 또다시 위장이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겨우겨우 다스리며 함께 살아보자 했더니 금세 삐져 울그락불그락 성을 내며 치료해 달란다. 어쩔 수 없이 보온팩을 데워 배 위에 얹고 뒤척이다 일어나 누룽지를 끓였다. 생각 같아서는 물 한 모금도 먹고 싶지 지만 다 같이 굶을 수는 없기에 꾸역꾸역 몇 수저라도 떠보려 해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다시 수저를 내려놓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걸어가도 괜찮을 거리에 있는 지난여름에 오픈한 내과를 갔다. 한 달 전에도 진한 사골국물에 끓여진 사골칼국수를 맛있게 먹고는 고생을 한터라 이미 한번 다녀간 곳이다. 어찌나 의사 선생님께서 친절하시던지 다부진 체격에 40대 전후되었을까. 조용조용 차분한 목소리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일일이 답하는 모습이 진찰만 받아도 나을 것만 같았다. 어쨌든 그때도 처방해 주신 약을 먹고 괜찮아져 1~2킬로가 늘어 이대로만 잘 나간다다이어트를 고민할지도 모르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했었다.


 며칠 전 아침, 급히 나갈 일이 있어 좋아는 하지만 삼가 왔던 삼각김밥을 기세 좋게 먹고는 탈이 나버렸다. 무슨 생각에 이번에는 대충 집에 있는 약 먹고 나아지겠지 싶어 이 약 저 약 먹어보았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오늘처럼 잠까지 설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뻐근한 가슴 쓸어안고 다시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고것이 좀 매웠는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요래 아프다 했더니 약해진 위장에 자극적인 매운맛으로 인해 위벽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약을 처방해 주셨다. 궁색하게 변명이라도 해보려고 '항상 조심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아 속상하다' 했더니 '어떻게 마음대로 다 되겠느냐'며 위로를 해주신다.


위가 안 좋은지 벌써 7~8년이나 되었으니 근처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섭렵하였고 다양한 의사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중에 코로나에 걸리고 폐렴으로까지 진행되어 치료했던 병원 의사 선생님의 매몰찬 언사로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있다. '항상 조심해야 하는데 괜찮겠지 싶어 먹고는 탈이 났다'하니 '아니 왜 다들 먹어서는 안 되는 걸 먹고, 여기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하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민망스러워 '그러게요'라고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사람 사는 게 아무리 가지각색이라 하지만 이리 다를 수가 있을까. 수많은 생명을 치료하고 보살펴 주시는 의료인으로서 마땅히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만 위와 같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오면 기분도 속도 더 안 좋다. 속이 안 좋아진 시발점은 시어머니의 치매가 시작되면서이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오십이 넘고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곁님도 퇴직하고, 시어머니마저 정신이 흐려지면서 손이 더 가야 했고 말없이 매주 나보다 덩치가 좋으셨던 분을 목욕시켜 드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분명 꾹꾹 눌러 참아야 하는 나만의 세계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5년 동안의 목욕시켜 드리기는 끝났지만 요양원 가시는 과정부터 최근까지도 응급실. 중환자실. 요양병원을 오가시며 내속을 태우고 계신다. 아무리 "괜찮다, 괜찮다" 좋은 날 있을 거라며 다독여 보지만 어제도 겨울옷을 챙기며 심란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 다녀와 부지런히 어제 싸놓은 겨울옷을 들고 요양원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요양원 앞 정원의 가을이 담뿍 내려앉은 알록달록 고운 단풍이 처량맞보인다.


이미 지난주에 가족들이 면회를 다녀왔기에 깨끗이 세탁한 겨울옷과 포근포근한 수면양말을 새로 사고, 건조해지는 가을날씨에 크림이라도 듬뿍 발라드리라고 커다란 바디크림도 한통 사서 넣었다. 비록 얼굴도 못 뵙고 가지만 어머니집에 다녀가는 것처럼 아쉬움이, 죄송함이 몰려왔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97세도 지나 98세가 되실 것이고, 요양원에 계신지도 7년이 되실 것이다. 그래도 우리 더 아프지 말고 잘 지내보자며 마음으로나마 손을 잡아보고는 쓸쓸히 빈 마음으로 돌아왔다.


걸핏하면 탈이 나는 에 먹는 것도 마음껏 못 먹어 항상 미안하지만 오늘도  어쩔 수없이 둘이서 집 근처 죽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침도 제대로 먹었으면서 도저히 먹히지 않아 포장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속이 좀 아프다고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기에 부지런히 우리 꼬맹이들과 먹을 어묵볶음을 하고 딸과 내가 좋아하는 새콤달콤 파래무침을 해서 싸들고 길 건너 딸 집으로 왔다. 잠시 후, 윤이가 오고 훈이가 왔다. 간식을 챙겨주고 나니 그제서야 속이 좀 진정이 되었는지 입이 궁금해진다.


가벼운 간식을 찾아 조심스럽게 먹고는 저녁준비를 한다. 오늘의 메인메뉴는 꼬맹이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이다. 바삭하게 구워 상추에 싸주면 아기새처럼 입을 쩍쩍 벌리고 잘도 먹는 훈이다. 윤이는 3학년이라고 알아서 잘도 먹으니 손이 갈 일이 없어 즐거운 식사는 금방 끝이 다. 바로 설거지를 하고 꼬맹이들을 태권도를 보내고 나면 6시 집으로 퇴근이다. 물론 집에 가서 부랴부랴 저녁을 차려서 먹고 치워야만 오늘 하루가 마무리된다.


너무 힘든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매일매일 커가는 꼬맹이들을 보며, 내수족이 성성하니 가족들을 위해 사는 일상이 평안하니 감사한 나날들이다. 더구나 아들이 여름내 회사일로 바쁘게 보내더니 표창장을 받았다는 카톡이 올라왔다. 여기서 무엇을 바랄까. 더 바란다면 욕심이지 싶다. 이렇게 틈틈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나에 평화로운 일상을 마주하며 오늘도 하루를 마친다. 모든 분들의 하루도 의미 있는 뜻깊은 괜찮은 하루가 되었으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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