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성큼 다가워 버렸습니다. 시린 손 호호 불며 기지개를 켜지 않은 새벽길을 걷노라니 따스한 침대 속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새하얗게 피어난 서리꽃에 갑작스레 달려든 추위도 잠시 잊어봅니다.무성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계절의 길목에 순응하며 어슴푸레하던 들녘이 조돈의 빛으로 새벽을 깨우니 자유로이 누운 마른 들꽃가지에 피어난 새하얀 서리꽃이 잔별이 되어 반짝입니다. 냇가에 놓인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건너뛰노라면 입김이 폴폴 날리고, 돌틈사이로 살얼음진 물결이 세월을 싣고 흐릅니다.
인생의 뜰아래 고운빛으로 반짝이던 날들이 하나 둘 저물어 간다 해도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지나온 날들의 추억을 곱씹으며 그날그날의 시간들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어느새 연말준비로 바빠진 거리는 트리로 장식되어 온갖 조명들을 쏟아내고, 갑작스레 추워진 탓에 종종거리는 걸음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들 틈에 끼어 화려한 조명 속으로 들어가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쇼핑을 했습니다. 얇아진 옷들위에 두툼하고 포근포근한 옷을 걸치니 몸도 마음도 따스해집니다. 오랜만의 외출에 무거운 값일지라도 시원하게 긁어대고, 우아하게 브런치도 즐기며 사치스러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로이 다가올 시간들이 있을 뿐 거스를 수 없는 계절 앞에서 오히려 설렘으로 가득 찼던 날. 온종일 쏘다니며 양손 가득 채우고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내 집을 찾아듭니다. 쇼핑한 옷들을 다시 펼쳐보며 흐뭇함에 창문을 가득 채우는 노을 지는 서녘하늘에 빠져봅니다. 인생이 별거겠어요. 이렇게도 사는 거지. 언제나 안온한 내 집이 기다려주고, 조석으로 기쁨을 주는 풍경들이 찾아와 주니 눈물 나도록 고마운 날들입니다. 님들의 뜰에도 고운 날들이 함께 하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