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야 Dec 05. 2023

마지막

삶과 죽음

기역자로 구부러진 허리, 스쳐간 세월이 칠해놓은 주름진 얼굴, 눈까지 침침해져 조카딸도 금세 알아보지 못했다며 목놓아 우신다. 부고 소식을 접하고도 오랫동안 중병으로 고생하셨기에 덤덤했었다. 하지만 근처에 다다르니 생전에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평생을 작은어머니께 타박만 하시고 살갑지 않으셨던 둘째 작은아버지. 그래도 먼저 가신 부모님 대신이라 여기며 마음으로나마 의지했는데 떠나시니 못내 아쉬워 슬픔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한참을 작은어머니 손을 잡고 울며불며 마지막 가실 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평생을 잘해준 적 없던 분이셨건만 막상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시니 이상하게 보고 싶으셨다는 말씀과 함께 또 눈시울이 붉어지신다, 아마도 살아온 정 때문일 거라 했더니 그런 것 같다며 또 울먹이신다. 막떠나실 쯤엔 나 이제 죽을 것 같은데 죽기 싫다 하시며 같이 울기를 여러 번 하셨다 한다. 기골이 장대하시고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만 치시며 약한 모습을 보인적 없으셨던 작은아버지. 정작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분이었다. 여러 번에 수술과 치료로 입퇴원을 반복하며 본인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사촌동생들 또한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꾹꾹 눌러 담았던 속상한 마음을 전화로 쏟아내던 사촌여동생. 그 애쓴 보람도 없이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길을 떠나셨다.


그렇게 살고 싶어 하셨던 이 세상에서 나는 지금도 살고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써 놓고 보니 간단하고 가볍기 이를 데 없건만 그 간극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도대체 사는 게 뭐라고 그렇게 아등바등 사시고 싶었을까. 아니 살아있기에, 누군가에게 마지막까지 죽음을 거부하며 살고 싶은 이승이기에 남겨진 우리는 애써 값지게 살아야 한다. 삶의 끝은 그 누구도 모른다. 나만은 그리 살지 않을 거라 예단할 수 없으며,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는 것이 죽음의 이다(스스로 선택하는 분은 제외).


길어진 수명 탓에 보여지는 노년의 삶은 천태만상이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노력한다 해도 그 인생의 끝은 자신도 모른 채 세월의 시간들만이 그를 데려다 줄 뿐이다. 그 누가 알았을까. 수년을 자신의 맑은 정신은 잃어버리고 천장만 쳐다보며 누운 채 살아가게 될 줄을. 질긴 목숨처럼 온갖 병마와 싸우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날들을 견뎌내고 있을 줄을. 어느 누가 그리 살고 싶어 했을까.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모양이 그것이라면 그리 살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본인 선택이 아닌 세월일지라도 살 수밖에 없는 시간들. 그것도 그 사람의 삶이니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마지막. 다만 이렇게 정신이 또렷하고 마음이 맑은 날 아침. 내게 주어진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살아내야 한다. 지금까지 어찌 살아왔든 정신이 올바른 날들만큼은 나 자신을 아끼고, 주위를 보살피며 그렇게 참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비록 내가 그런 날들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다음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날들을 위하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 선대들이 그러했기에 지금에 편안함을 누리게 되었으니 나 또한 후세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본다. 마지막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을지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