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택배가 온다는 알림이 왔다. 어라~ 내가 뭘 주문한 적이 없는데 하고. 발송인을 보니 아들이다. 에고, 아들이 주소를 확인 안 하고 우리 집으로 잘못 보냈구나 싶어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맞아 엄마 꺼임", "뭣인디", "보면 알아" 나는 혹시 다음에 가져다준다던 양배추즙을 보냈나 싶어, 아무 때나오는 길에 가져다줘도 되는데, 택배비를 아까워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나절이 지날 무렵 점심을 먹고 있는데 문 앞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참 좋은 세상이다ㅎ. 바로 나가 들고 온 상자는 제법 큰데 무척 가볍다. 뭐지 싶어 상자를 열고 또 상자를 열어보니, 또 쇼핑백이 있고 또 열어보니 뽁뽁이로 정성 들여 포장한 예쁜 상자가 나왔다. 도대체 이게 뭔데 또 싸고 쌌나 싶어 열어보니, 다양한 모양과 색들로 꾸며진 현란한 초콜릿들이 작은 상자들에 예쁘게 담겨 있다. 아~ 며칠 있으면 아들이 화이트데이라고 보냈구나. 그전에도 집에 오는 길이라면 꼭 작은 거라도 사다 주곤 했지만, 이렇게 택배로 받은 것은 처음이다.
어디서 요렇게 예쁜 걸로 주문해서 보냈나 싶었다. 아들이 생각하고 보내준 것인데 점심을 먹다 말고 하나 꺼내먹어 보려고, 상자를 펼치니 노란 봉투에 담긴 카드가 나왔다. 요즘은 카드까지 써서 보내주는 곳이 있구나 싶었는데 이건 분명 아들 글씨다.
To. 사랑하는 우리 엄마
엄마~ 요즘 참 힘들지?
작년부터 지금까지 참 편한 날
이 없네... 우리 엄마
가족들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줘야 하는데, 우리도 정신없고,
누나네도 항상바빠서 엄마한테
오히려 기대게 되네.
시간이 후딱 지나서 우리 엄마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
초콜릿은 복직 전에 내가 직접
만들었어...
먹고 힘내고 언제나 사랑해~♡
건강 잊지 말고 I love you~♡
Happy white day~
from. your son
나는 이 카드를 읽으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울다 보니 남편 앞에서 멋쩍었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객쩍게 한마디 했다. 아빠한테는 안 보내고 엄마만 챙긴다고 하며 내가 감격해서찔찔 짜는 것을 멈추게 했다. '혼자만 먹으라고 보내줬겠어, 같이 먹으라고 보냈겠지" 하며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것을 만드느라 얼마나 부산스럽게 늘어놓고 난리를 쳤을까. 초콜릿을 만들어서 하나하나 수놓듯 장식을 하고 예쁘게 포장하고, 엄마가 기뻐할 생각만으로 아마도 족히 몇 시간의 수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점심을 먹다 말고 달달한 초콜릿보다도 아들이 엄마를 걱정해 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 더 맛있게 먹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나에게는 참 걱정을 달고 사는 시간들이다. 올해 97세로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께서 작년 추석 무렵 갑작스럽게 패혈증이 와서 중환자실에 오랫동안 입원하시는 바람에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다행히 잘 치료를 하시고 퇴원을 하셨지만, 이번엔 친정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작년에 입원한 엄마의 투병생활은 해를 넘기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과정을 겪으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잘 버티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아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외할머니의 안부를 물으며 걱정을 해주는 정 많은 아들이다. 누나인 딸은 내가 시어머니 일로 힘들어할 때마다 '엄마 서울에서 그렇게 어렵게 살았을 때도 잘했었잖아' 하며 엄마가 살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맏이로서 나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두 아이를 낳아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운 내 아이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고 자식들의 위로와 사랑으로 버텨야 하는 시간이 있을 줄이야.
몇 달 있으면 2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해야 하는 아들은 지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2년의 공백 기간으로 업무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이고. 전출도 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마음이 많이 복잡할 텐데 항상 엄마를 잘 챙겨주려고 하는 우리 아들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다. 그래도 우리 아들 잘할 거야, 언제나 낙천적이고, 마음먹으면 밀고 나가는 아들이기에 엄마는 믿고 응원할게. 엄마도 아들이 걱정하지 않게 이 초콜릿 맛있게 먹고 씩씩하게 잘 지내도록 할게. 사랑한다. 내 아들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