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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Dec 09. 2023

그러지 않도록 해볼게요

우리 잘 지내보자

참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인자하고 손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흔쾌히 다 들어주고 한없이 자애롭 사랑만을 듬뿍 주는 따뜻한 할머니이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내가 너무 착한 아이들을 키웠고, 세상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TV에서나 보았지 우리 손자들마저 이럴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연년생을 낳아 키웠지만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크게 없었습니다. 단지 아들이 매일 밖에 나가서 노느라 집에 늦게 들어와 온 동네를 찾으러 다녔던 일 말고는, 전혀 다투는 일 없이 남매가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기에 다들 그리 크는 줄 알았습니다.

 

집단상담과 개인상담을 하며 여러 친구들을 만나왔지만 그렇게 만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요. 돌봄은 당장 내 앞에 놓인 현실이니까요 그러하니 생각지 못했던 행동을 하는 손자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야말로 멘털이 로그아웃되기 일보직전입니다. 어쩌다 만날 때는 그저 칭찬해 주고 안아주고  예쁘기만 했었지요. 하지만 막상 오후 시간을 거의 같이 보내다 보니 마냥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어쨌든 딸부부 대신 직접적으로 양육에 참여하다 보니 그럴 때마다 딸에게 일일이 말하기도 그렇고, 지혜롭게  상황들을 정리해 나가야만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벌어지는 일들이 다양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소리 지르며 울고불고 학원을 가네 안가네 하는 문제들입니다. 아주 가끔 그런다면 어떻게든 넘어가 보겠지만  날이 갈수록 빈도가 잦아지니 특단에 조치가 필요한 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월, 화요일 정도까지는 무난하게 지나가나 싶지만 수요일 정도가 되면 아이들도 힘이 드는지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3학년 윤이는 게임도 하고 싶고. 유튜브도 더 보고 싶은데 학원은 가야 하니 울고불고 난리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저렇게 달래 보기도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지요


그렇다고 명색이 할머니인데 같이 소리 지르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야단치는 일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으니 고민스러웠지요. 다음날에는 훈이가 또 내속을 뒤집습니다. 숙제를 해야 하는데 졸음이 쏟아지니 속이 상한 나머지 갑자기 죄 없는 형아를 태권도를 배운 그 실력으로 두들겨 패고 난리도 아닙니다. 다행히 그 상황에서도 윤이는 맞받아치지 않고 동생이 때리는 대로 방어만 하며 황당해할 뿐이니 그럭저럭 넘어갔지요. 그다음 날은 윤이가 또 폭발을 합니다. 내리 3일을 겪고 나니 기운이 쏙 빠져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희들 할머니가 이래도 저래도 예뻐서 참고 또 참았는데 연속 3일 동안 이러니 할머니가 너무 힘이 드는구나. 처음엔 차분하게 시작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말았습니다. 할머니의 그런 모습에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진 윤이는 '할머니 그러면 우리 안 돌봐 주실 거예요!' 합니다. 그건 너희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겠지. 앞으로도 할머니를 이렇게 힘들게 할 건지. 언제 할머니가 단 한 번이라도 큰소리를 했더냐. 할머니는 너희들이 원하는 거라면 다해줄 수 있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 이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할머니의 단호함 때문인지 한껏 풀이 죽은 두 녀석들에게서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래놓고도 어찌나 짠하던지 할머니가 소리를 높여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오늘 일은 아빠엄마에게는 비밀로 하겠다는 약속도 했지요. 만약 알게 되면 할머니 앞에서 예의 없이 그랬다고 한소리 들을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매일이 행복한 들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도 커가는 과정이라 여기며 예쁘게 보려 애쓰지만 가끔은 정리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것처럼 말끔해진 마음으로 새로운 한 주를 마주했습니다. 이제 달력도 한 장 남은 12월이네요. 왜 그리 세월은 빠른지요. 거리마다 아파트입구마다 너도나도 질세라 반짝이며 크리스마스를 노래합니다. 그러하니 우리도 트리장식을 해야겠지요.

우리 강아지들!

올해 갖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뭘까?

글쎄요. 게임기! 너무 비싼가.  

레고! 아직 정하지 못하겠어요.

그럼 일주일 안에 선물 신청해 주겠니.

할머니는 받고 싶은 선물이 뭐예요?

할머니는 너희들이 소리 안 지르고 짜증 안 내고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야.

할머니는 우리가 그러는 것이 많이 싫으세요.

음, 할머니는 너희 엄마랑 삼촌을 키우며 그런 적이 없어서 많이 힘들어.

아~ 그러지 않도록 해볼게요.


그렇게 짜증 내고 난리 칠 때는 언제고 이렇게 해맑은 얼굴로 할머니를 감동시키는 요 녀석들을 바라보며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또다시 그럴지라도 저리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리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요. 하루는 훈이가 읽고 덮어둔 책을 보고는 질문을 했지요.' 하늘의 별을 찾기 쉽도록 이름을 지어준 별이 두칠성이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은하수도 있고, 오리온자, 물뱀자리,.... 있는데 새로운 별자리를 훈이가 만든다면 어떤 별자리를 만들고 싶을까?'

어~  할머니 별자리!


캬아아~~~~

이 맛에 손주 돌봅니다. 온 얼굴에 웃음기를 가득 머금고 부끄러운 듯 말하는 훈이가 어찌나 귀엽던지요. 크게 바라지 않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고, 어디 다치지 않고, 가끔은 토닥이면서도 화해하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리 살아가고 싶습니다. 오늘도 그런 손자들이 너무 예뻐서 손 가는 호떡도 만들고, 육전도 붙여서 한 상 차려주었더니 싹싹 비웠네요.

손자들!

우리 앞으로도 재미있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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