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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an 05. 2024

둘만의 소박한 생일상

생일 축하드려요!

한 해의 끝자락 7남매 중 4형제의 가족들이 모였다. 이미 한 달 전에 인터넷으로 식당을 예약하고, 그래도 못 미더워 며칠 전에 현장을 방문하여 예약을 확인했다. 연말이라 어디나 만석이고 시끌벅적 문전성시를 이룬다. 어머니의 아들들 4형제의 분신에 분신들까지 모두 23명이 되었다. 그중 군복무 중인 조카를 제외하고 22명이 모였다. 4형제 부부는 지금도 일 년에 몇 번씩 모여 담소를 나누곤 하지만, 코로나19전에는 이맘때면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오늘처럼 온 식구가 모여 생신잔치를 하곤 다.


바로 며칠전이 어머니 97세 생신이었다. 격월로 가다 보니 이번에는 시누이들째 시동생이 요양원 면회를 다녀왔다. 몇 번의 통화로 전해 듣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건강도 유지하시고 식사도 잘하신다는 소식을 주셨다. 작은 케이크에 고깔모자까지 쓰시고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세상걱정 없는 어린아이 같으시다. 미역국에 가져간 간식까지 싹싹 비우셨다며 흡족한 마음으로 소식을 전해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예전 같았으면 요란스럽게 7남매 가족 모두가 모여서 축하를 드렸을 텐데 그도 이제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전에는 조금이라도 거동을 하셨지만 이제 와상환자로 누워서  대소변을 해결하고 계시기에 잠시의 면회 말고는 외출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도 가족들이 갈 때마다 활짝 웃으시며 반겨주시고, 이렇게 올라오사진들볼 때마다 감사하다. 그렇다고 조마조마하는 마음이 사라질리야 없지만 다음 달 뵈러 가는 날까지 그대로이시기를 기원하곤 한다.




어머니 생신이 지나고 결혼한지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둘만의 조촐한 생일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어머니의 생신과는 불과 5일 차이다 보니 그럴듯한 생일상을 차려준 적이 없다. 예전에는 집에서 늘 7남매가 모이는 어머니 생신음식을 준비했기에 며칠에 걸려 음식을 장만하고 치우다 보면 또다시 바로 생일상을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남은 음식들로 며칠을 먹어 치우기 바쁘다 보니 겨우 미역국 한 그릇 더 끓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이 출가하면서 그나마 외식을 하고 형제들과 함께 밖에서 먹기도 한다.


점심에 가족모임 뷔페에서 과하게 먹었기에 특별하게 차린 건 없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몇 가지로 접시를 채우고 미역국을 한가득 담았다. 무슨 때마다 늘 북적거리며 사느라 안 하던 짓을 하니 조금은 멋적스럽다. 점심에 많이 먹었는데 뭘 그리 차렸느냐며 수저를 드는 모습이 당신도 좀 그런 모양이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느긋하게 식사를 하다 흐뭇미소로 마주한다. 지난밤에는 세 꼬맹이 손주들 때문에 돌아가며 세 번이나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송을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환갑이 되던 해에도 어머니 구순과 맞물렸다. 그때는 아이들이 넉넉하게 경비를 주는 바람에 둘이서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그럼에도 형제들이 마음에 걸려 어머니 구순과 함께 가까운 호텔뷔페에서 여행에서 남은 경비로 식사를 했다. 물론 축하금은 사양했다. 그뿐이랴 하필 생일 전날이 둘째 시작은 아버님 제사라 아침 일찍부터 달려가 제사음식 준비하느라 생일미역국도 끓이기 바빴었다. 지금은 따뜻한 봄날 작은어머니 제삿날에 산소에 가서 술 한잔 올려드리기에 그나마 본인 생일을 찾아가고 있다.


생일이 별거냐 할 수도 겠지만 그래도 특별하게 온전히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생일상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 터이다. 장남임에도 이래저래 치이느라 정작 본인 생일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으니 때로는 나조차도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어머니께서 요양원에 계시니 드러내놓고 요란하게 생일잔치를 하기에는 그렇지만 이렇게나마 둘만의 생일상을 차려 먹으며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맛있게 드시라며 둘만의 정다운 식사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떤 사람보다도 배우자의 정성이 담긴 음식과 진심 어린 축하가 있었으니, 이만하면 섭섭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며 그동안 함께 해온 시간들에 감사의 마음도 담아본다.

생일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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