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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r 31. 2023

봄날의 초대

봄꽃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조금은 일찍 찾아온 따스한 봄햇살로 서둘러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봄꽃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아침산책길에 마주하는 꽃들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아주 작게 시작한 꽃망울이 조금 더 커지고 살짝 피는가 싶더니 어느새 활짝 피어 쏟아지는 햇살과 함께 하늘하늘 춤을 춘다. 봄이 시작되면 주차장 없이 정원수들로 잘 꾸며진 1층 아파트 산책길에는 키 큰 소나무, 활짝 핀 벚나무, 단풍나무, 감나무등과 봄이면 피어나는 여러 가지 꽃들로 가득하다. 무지개 곡선을 그리며 번지는 분수대 아래 꼬리를 흔들며 노니는 색색에 물고기들이 여유롭기만 하다. 또 여름이면 거실창가에 앉아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작은 폭포소리에 잠시 무더위를 잊어보기도 한다. 오늘도 공원처럼 예쁘게 꾸며진 산책길을 거닐다 활짝 피어난 벚꽃 사이로 수줍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라일락꽃을 보며 추억에 젖어본다.




나는 작은 연탄 리어카 한대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 두 번째 집, 대문을 열면 움푹 들어간 마당 깊은 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작고 허름한 집이지만 오밀조밀 나름 마당도 있고, 목욕탕도 있고, 목욕탕 위에는 장독대도 있었다. 따스한 봄날이 시작되면 할 일이 많아진다. 겨우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니 전에 칠해 놓은 페인트가 제대로 붙어 있을 리 없는 담벼락을 다시 칠하는 일이다. 너덜너덜 달려있는 페인트 조각들을 살살 문질러 벗겨내고, 검은색에 흰색페인트를 섞어 회색을 만든다. 일일이 작은 솔로 구석구석 꼼꼼히 칠하고 나면 골목길에서 환해진 우리 담벼락이 너무 좋았다.


남편은 혹여 여름장마에 비가 새서 방안에 또 바가지들을 늘어놓는 일이 없도록 지붕에 올라가 깨진 기와들을 갈아준다. 그리고 마당처마에 매달려 있는 물받이들이 깨어져 비가 오는 날에 물벼락을 맞지 않도록 일일이 확인하고 뚝딱뚝딱 수리도 잘한다. 하지만 여름장마가 길어지면 연탄구멍에서는 펌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처럼 솟구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골목길보다 한 참 깊은 집에서 사는 사람에 비애다. 그래도 한여름 무더위에도 장판에 누우면 냉기가 느껴지도록 시원했고, 선풍기 없이도 여름을 충분히 나곤 했었다. 물론 겨울에는 너무 습하고 추워서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하이라이트!

봄에 피어난 라일락꽃 향기가 작은 골목길을 가득 채우는 날이면 나는 행복했다. 막힌 골목길 끝집에 사시는 약사님 댁에는 꽤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봄이면 유난히 활짝 피어나 살랑이는 봄바람에 실려 오는 그 향기로 골목집 식구들은 호사를 누렸다. 모두 출근하고 나면 마당 한편에 콸콸 물도 잘 나오는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커다란 고무대야에 빨래들을 가득 담아 비스듬한 빨래판에 벅벅 문질러 손빨래를 한다. 있는 힘껏 짜서 장독대로 올라간다. 아무리 짜내었어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탁탁 털어 마알간 햇살아래 널어놓고 행여 봄바람에 날아갈세라 빨래집게로 집어 놓고 나면 파란 하늘에 눈이 시렸다.


나는 자주 한참을 장독대에 걸터앉아 봄을 만끽하곤 했다. 고개 들어 저 멀리 오른쪽을 바라보면 작은 산이 있다.  봄이면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는 싱그러움과 만발하는 꽃들로 눈호강을 하였다. 또한 산속 어딘가에서 청량하게 들려오는 산까치 노랫소리에 설레는 하루를 기대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내가 꿈꾸었던 거대한 아파트 옆으로 한강이 살얼음을 걷어내고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가끔은 걸어서 가면 20분도 채 안 걸리는 한강으로 아이들과 몇 번 나가 기도 했었지만, 그냥 일반적인 강가 오솔길 같은 길을 따라 걸었던 기억만 있다. 아마도 그때는 많이 다듬어지지 않은 때여서 그랬을 것이다.




너무 추억소환이 길어졌다. 글을 쓰면서 역시 그래도 행복했었다고 생각을 하면 그 순간만큼은 행복 속에 젖어드는 느낌이다. 겨우내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었지만 이제 봄꽃놀이도 가고 멀리 여행도 떠나보려고 한다. 여기저기 피어난 봄꽃들이 이제 슬픔을 걷어내고 함께 행복해지자고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우선 이번주부터 벚꽃축제 기간이라는데 남편과 함께 벚꽃길투어에 나서보려고 한다. 살며시 봄날 꽃축제에 여러분도 초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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