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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r 20. 2024

혼자 점심 먹기

한낮의 여유로움

혼자서 밥 먹으며 글 쓰고 있어요. 예전 같으면 밥상머리에서 뭐 하느냐며 혼이 날 각인데요. 아무도 없는 휴일, 작은 호박고구마까지 올려 따순 밥을 지어먹노라니 그리 좋을 수가 없습니다. 먹으며 쓰든, 먹다 말고 쓰든 뭐랄 사람도 없고 있는 반찬 몇 가지 꺼내어 짭짭거리며 먹는 점심이 꿀맛입니다. 맵찔이라 매콤한 반찬은 없지만 어제저녁에 끓인 구수한 황태감잣국과 새콤달콤 파래무침, 짭조름한 콩자반, 초록초록 맛이 있는 비듬나물, 신비로운 맛을 자랑하는 완도산 고사리와 겨우내 나를 먹여 살린 아직도 맛을 유지하고 있는 동치미 한 그릇에 그저 행복한 점심입니다.


누가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고 했나요. 오전 내내 동동거리며 얼갈이배추와 열무로 봄김치도 담그고 베란다에 피어난 봄꽃들에게도 물을 흠뻑 주느라 쉴사이 없이 분주한 시간을 보냈으니 어찌 안 맛있을 수가 있을까요. 시장이 반찬이라고 그 때문이기도 지만 어려서도 대가족속에서 자랐기에 그 밥이 맛있었을지는 몰라도 오늘처럼 여유로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할머니, 아버지, 장남인 오빠가 큰상을 마주하고, 그 아래로 작은 상에 옹기종기 어머니와 나머지 4남매가 비좁게 앉아 먹었으니 여유는커녕 서둘러야 찍어먹을 반찬 한 가지라도 더 먹을 수 있었으니 그저 욱여넣기 바빴지요.


결혼하고도 역시 시어머니와 시동생들, 우리 부부와 아이들까지 먹어야 하니 식탁 한가득 차려내고 나면 기운이 빠져 어떻게 먹었는지 생각도 잘 안 나네요. 넉넉지 못한 살림에 다음끼니는 무엇으로 차려야 하나, 시동생들은 모두 어떻게 결혼을 시켜 독립시켜야 할지, 내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잘 먹여 키울 수 있을까, 늘 다음 걱정만이 가득했던 나날들. 


어찌어찌하여 시동생들도 내 밥상에서 떠난 지 오래고, 내 아이들마저도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아 본인들 밥상으로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 사람을 위해 조금은 격식 있게 매 끼니 색다른 반찬을 한 가지라도 더 해서 올려야 하고, 퇴직도 없는 이넘에 밥상 차리기가 때로는 귀찮아질 때가 있네요. 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쩌다가 옆지가 점심약속이 있는 날이면 무슨 적금 만기일처럼 몸도 마음도 두둥실 이렇게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꿈같은 시간을 맞이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나만의 시간으로 냉장고에 있는 반찬 몇 가지 꺼내어 소박하게 차려먹거나, 온갖 반찬들을 꺼내어 양푼에 담고 계란프라이 하나 올려 쓱쓱 비벼 맛있게 먹기도 합니다.


혼자 오래 살아온 사람처럼 이것저것 끄집어내어 정리도 하고 널브러져 휴식을 취하며 달달한 아이스크림도 꺼내먹고 먹지 않던 과자들도 꺼내어 아작거리며 빈둥거리는 이 시간이 왜 이리 좋은지요. 혼자여서 좋고 혼밥이어서 좋고, 그래도 오늘 같은 날들이 너무 자주 오면 별로 재미없겠지요. 가끔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시간에 소중함까지 부여하며 (쉴새없이 삐져나오는 웃음참으며) 오늘도 참 멋진 하루였습니다.

혼자여서,

혼밥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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