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야 May 05. 2023

희야, 정신 차리자!

성당결혼식에서...

며칠을 정신없이 보내고 난 후였다.

'암이면 어쩌지'

'아니겠지' 

하며 나에 정신세계를 탈탈 털리고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었다. 그날도 양양에서 날아온 천사 같은 손녀는 온몸이 녹아내릴 듯이 간지럽고 말랑말랑한 혀 짧은 콧소리로 나를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가 너무 좋아요!

그렇게 넘치는 행복세례를 폭포수처럼 맞으며 사랑으로 가득한 아침을 시작했더랬다.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지.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치우고 나니 모든 주부들에 공통적인 숙제

'점심에는 또 무엇을 먹을까'

란 고민에 빠졌다. 논의 끝에 아들이 좋아하는 수제비를 메뉴로 결정하고, 미리 반죽을 해서 냉장고에 숙성에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온갖 재료들을 넣어 육수를 끓이며, 감자와 호박, 양파, 대파도 썰어 두었다.


맛있게 우러난 육수도 간을 맞추고, 준비가 아주 순조롭게 끝나가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근처에 사는 절친의 전화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너 어디야!

왜?

집이야.

결혼식장 안 오고 뭐 하니?


아차!

미쳤구나 미쳤어.

오늘이 자야 아들 결혼식인데 까맣게 잊어버리고 태평스럽게 수제비나 만들고 있었다니 환장할 노롯이다.  


수제비를 떼어 넣기만 하면 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점심준비한다고 늘어놓은 식기류들이 싱크대위에 넘쳐나는데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들에게 반죽덩어리를 던져주고, 대충 씻고 하객룩으로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던 남편이 결혼식장으로 태워다 주었다.


오랜만에 온 아들이 엄마가 해주는 수제비를 맛있게 먹으려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오니 팅팅 불은 수제비가 손가락만 하다. 엄마가 얇게 어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수제비를 만들어주려 했었는데, 수제비는 커녕 늘어놓은 그릇들 설거지하느라 애썼을 아들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기 망정이지 큰 실수를 할뻔했다. 그리고 성당예식이라 시간이 길다 는 행운이 있었기에 이미 예식시간인 12시가 넘어서 도착했지만, 축하를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기에 그 또한 다행스러웠다 




성당예식은 처음 참석해서 많이 궁금했었다. 수없이 기도가 이어지고 전혀 알 길이 없는 과정이 반복되어도 그냥 따라 했다. 마침 뒤에서 신자인듯한 분께서 어찌나 열심히 기도를 하시는지, 나도 같이 마음을 보태며 축복에 열심히 동참하였다.


예식이 끝날 무렵 역시 MZ세대답게 용감한 신부에 멋진 고백송이 울려퍼지며,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던 성당 안이 한바탕 축제의 장이 되었다. 그제서야 늦어서 당황했던 긴장이 풀리고 성당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유럽에서 보았던 그 화려함과는 다르지만 충분히 성스럽고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만큼 오늘에 주인공 두 사람도 아름다운 인생을 꾸려나가기를 기도했다.


나도 제발 정신 차리고 살자!


아 멘.

매거진의 이전글 49제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