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에서 제를 올리기로 한 첫 번째 해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날씨정보에 가슴 졸이며 음식을 준비했다. 한 가지만 한다 하면서도 또 3가지가 되고, 하나 둘 늘다 보니 또 보따리가 커졌다.
집에서 사월초파일에 모시던 조부모님, 증조부모님 제사를 올해부터는 산소에서 간소하게 지내기로 했다. 내 건강이 온전치 못하기도 하고, 요즘 많이 변해가는 추세도 있고 해서 형제들 간에 의논하여 결정한 일이다.
말이 간소하게 지 하다 보면 자꾸 가짓수가 늘어 결국 푸짐하게 가 되어버린다. 술과 포, 떡, 과일. 산적만 해서 지내기로 했건만 그래도 서운하니 전하나만 하자한 것이 집에 재료가 있다는 핑계로 3가지를 했다.
내가 해주는 음식이면 언제나 맛있다고 잘 먹어주는 우리 형제들이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비가 멈출 줄 모르고 끝도 없이 쏟아져 결국 꺼내보지도 못했다. 더구나 차는 어찌나 밀리던지 배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비가 그치겠지 하며 가까이 사는 손자들까지 데리고 나선 길이었다. 귀여운 장화까지 신고 곤충 잡아 보겠다고 채집통까지 들고 간 손자들이다. 멀미까지 하며 갔지만 계속되는 비로 차 안에서 나와보지도 못했다.
차가 막히다 보니 모두 늦어져 우선 예약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사이에 비가 그치길 바랐었다. 제대로 아침도 못 먹고3시간 반 이상 운전을 해왔으니 허겁지겁 배를 채워야 했다. 그런데도 멈추기는커녕 더 내렸다.
몇은 빠졌지만 15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모였으니 그냥 갈 수도 없고, 우산을 들고 산소 앞에 모였다. 계속되는 빗줄기에 가져온 음식들은 차치하고, 엎드려 절도 못하고 목례로 대신했다.
아쉽고 섭섭한 마음 뒤로 하고 막히지 않는 길을 씽씽 달려 집으로 왔다. 오자마자 국거리를 사다가 탕국을 끓이고,제사준비를 했다. 아침에도 비가 오니 집에서 하자 했건만,모두 준비하고 나선 길이니 일단가보자 해서 이 사달이 났다.
결국 원점으로 가져갔던 음식 모두 꺼내고, 몇 가지 음식을 더 준비해서 상을 차리고 손자들과 제를 올렸다. 따뜻하게 먹으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한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제를 올리고 나니 고단했던 몸과 마음이한시름을 덜어낸 듯조금은 가벼워진다. 7남매 맏며느리에 숙명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