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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 Jan 25. 2017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8쪽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남게 되는 건 아닙니다.


21쪽

“난 너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무엇이든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려. 하지만 만약 시간만 있다면 나는 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46쪽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51쪽

아마 내 마음속에는 딱딱한 껍질 같은 게 있어서, 그걸 뚫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제한되어 있는 것같이 생각된다고 나는 말했다. 그래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53쪽 물음표

주인공은 왜 무시도 아니고 모든 일에 적당히 거짓말을 하는가?


120쪽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내 마음대로 하는 거야.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것. 가령 지금 내가 자기에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말이야, 그러면 자기는 모든 걸 집어치우고 그걸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헐레벌떡 돌아와서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야.’ 하고 내밀겠지. 그러면 나는 ‘흥, 이런 건 이젠 먹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그걸 창밖으로 휙 내던지는 거야.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거란 말이야.”

“그런 건 사랑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은데.” 하고 나는 조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관계있어. 자기가 알지 못할 뿐이야.” 하고 미도리는 말했다. “여자에겐 말이야, 그런 게 굉장히 소중할 때가 있는 거야.”

“딸기 쇼트케이크를 창밖으로 내던지는 행동이?”

“그래, 난 상대방 남자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어. ‘알겠어, 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네가 곧 딸기 쇼트케이크가 먹고 싶지 않게 되리라는 것쯤은 짐작했어야 했는데. 내가 당나귀 똥만큼이나 바보스럽고 무신경했어. 사과할 겸 다시 한 번 뭔가 다른 걸 사다 줄게. 뭐가 좋아? 초콜릿 무스, 아니면 치즈 케이크?”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난 그렇게 받은 것만큼 분명하게 상대방을 사랑할 거야.”

“지극히 불합리한 이야기 같은데.”

“하지만 난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172쪽

“가끔 저렇게 되거든. 흥분하고, 울고. 그래도 차라리 저런 상태는 나은 거야. 감정을 드러내 보이니까. 무서운 건 드러나지 않을 때거든. 그렇게 되면 감정이 몸속에 쌓이고 점점 굳어가는 거야. 온갖 감정이 뭉쳐 몸속에서 죽어가지. 그 지경이 되면 큰일이야.”


191쪽

“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말이야. 우리가 지불해야 할 때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고지서가 이제야 돌아온 거야.”


222쪽

“하지만 그뿐이야. 그들은 거기서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하거든. 왜 그럴까? 그건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야. 노력하는 훈련으로 다져져 있지 않기 때문이야. 망쳐버리는 거지. 어설픈 재능이 있어서 어릴때부터 노력하지 않아도 꽤 잘해내고, 모두가 잘한다, 잘한다 치켜세우니까 노력 따위를 시시하게 여기는 거야. ~ 이건 비극이야.”


285쪽

나도 매일 아침 나 자신의 태엽을 감고 있다. ~ 아침 침대 속에서 너를 생각함으로써, 자, 태엽을 감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보자 하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354쪽

나는 이제 십대 소년이 아니니까. 난 책임이란 걸 느낀다. ~ 난 이미 스무 살이 된 거라고. 그리고 난 계속 살아가기 위한 대가를 치러야만 해.


387쪽

분명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 그 어떤 진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성실함도, 그 어떤 강인함도, 그 어떤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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