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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 Feb 02. 201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고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쉽고 재밌었다. 스토리 자체는 뻔하다. 가정적이지 못한 남자와 그런 남자를 항상 기다리는 여자. 남자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기는 일은 비일비재했고, 그런 남자를 고독하게 바라보며 오랜시간 기다려주는 여자. 그런 고독한 여자에게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는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고, 그 새로운 남자로 인해 여자의 소중함을 모르는 원래의 남자가 여자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야기. 그럼에도 이 소설이 재밌고 인상깊었던 점들은 인물들의 현실적인 감정 변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읽는 이들에게 하여금 분노와 체념을 불러일으키는 결말.


로제는 폴이 항상 자신을 기다리고 외로워하는 것을 분명 알고있지만 외면한다. 배려해주는 척하는 행동들로 폴을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버림으로 자신은 잘못하고 있지 않다며 정당화해버린다.


시몽. 불쌍한 시몽. 그 무엇보다 열렬하게 폴을 사랑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픔이었다. 폴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그는 성장해 나갔고, 폴과의 이별로 인해 더더욱 큰 성장을 하여 더 멋있는 남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와 계속 사랑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는 확답할 수 없다. 시몽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로제와 같은 남자가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


폴은 충만하고 행복한 사랑을 버리고 다시 고독하고 허무한 사랑을 택했다. 너무 오랜기간 공을 들였던 관계가 아까웠던 것인지, 익숙함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어리석다는 비난을 불러일으킨다. 폴과 같이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스스로에게 가학적인 상황을 선택하는 기질이 있는 듯 하다. 약간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폴도 머리로는 시몽을 만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본능적으로 익숙한 로제를 다시 찾았다.


폴이 대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잘못은 누구 때문일까. 폴을 고독속에 방치하는 로제? 아니면 그런 로제를 쳐내지 못하는 폴?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로제의 잘못으로 느껴지지만 결말을 보게되면 폴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


12쪽
그런 그를 비난하는 건 그 말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교활함 때문이었다.(그는 그 자신으로 인해 그녀가 외롭고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 아닌가.)


37쪽
그날 밤 폴을 데려다 준 로제는 그녀의 집까지 올라왔다. 그가 잠이 들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녀를 품에 안고 있는 바람에 그녀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44쪽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73쪽
‘당신이 다시는 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당신의 시몽.’


81쪽
그녀는 그를 끝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다가, 이어 그런 잔인성을 뉘우쳤다. 그런 잔인성, 곧 복수에 대한 불합리한 욕구는 그녀 자신의 슬픔의 이면이었을 뿐, 시몽은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107쪽
그는 행복한 몽유병자처럼 행동했고,


109쪽
그것은 의무라기보다는 배려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139쪽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147쪽
그들 두 사람은 ‘상대’의 어깨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움직임도, 리듬도 없는 느린 춤곡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미소조차 보이지 않은 책, 서로 알은체도 하지 않은 채 10센티미터 거리에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로제는 여자의 등에서 손을 떼어 폴의 팔을 향해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그녀의 팔에 와 닿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어찌나 간절했던지 그녀는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다.


150쪽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155쪽
“사랑에 대해 세월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견디게 해주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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