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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 Feb 09. 2017

평범한 대한민국 여자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소설의 주인공은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82년생 여자 김지영 씨의 이야기다. 김지영 씨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살아가며 겪는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여타 소설처럼 주인공인 김지영 씨에게 엄청나게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다거나, 극적으로 어마어마한 능력을 얻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흔하디흔한 삶을 그려낸다. 김지영 씨도 때로는 불평등한 사회에 저항하고, 여자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동안 남성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던 사회 시스템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며 살아가다 미쳐버리고 만다.


100쪽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 거야." ...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여성의 권리를 외친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시작하는 순간 많은 사람과의 오랜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나의 아빠, 남동생, 미래의 남편, 그리고 여태 남성 위주 사회가 당연하다고 배운 다른 여자들. 그들 모두와의 싸움의 시작은 필연적이다. 단적인 예로 집안일을 보아도 그렇다. 집안일이라는 것이 가치 있는 노동의 하나며, 집안일 또한 분배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순간, 당장 내 가족의 남자들과 길고 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남자뿐만이 아니다. 남성 위주 사회가 당연하다고 살아온 엄마나 할머니, 고모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149쪽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82년생인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래도 94년생 정원희인 내가 사는 사회는 김지영 씨의 사회보다 평등한 사회에 살아감에 안도를 해야 할지, 아니면 아직도 많은 부분이 그대로임에 한숨을 쉬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132쪽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내가 살아온 세월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기간 동안 남성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고 있던 사회를 당장 하루아침에 뿅 하고 평등하게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무리임을 안다. 그저 지금의 사회는 성별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각 성별에 주어진 불평등이 있음을 인정하고, 개선해나가야 함을 인식하는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117쪽
당신의 그 소중한 딸도 몇 년후에 나처럼 될지 몰라, 당신이 계속 나를 이렇게 대하는 한.


 2016년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여성혐오 혹은 남성혐오였던 것 같다. SNS에서 남자 vs 여자 라는 대결 구도를 만들어 싸우는 것이 답답했다. 서로에게 주어지는 고충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감해주어 개선방안을 찾았으면 했다. 서로에게 주어지는 혜택에 대해서는 나는 아니지만, 나의 아빠, 혹은 엄마. 아니면 미래의 남편이나 딸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라 생각했으면 했다. 서로가 다른 특성을 가진 사회의 일원으로서 좀 더 나은 세상에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게 발전적인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가 더 힘든지 가려내고, 더 많은 차별을 받는다고 경쟁하는 것이 과연 나은 방향일까.


136쪽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 안 그러려고 했는데 억울하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스스로가 박탈감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문득 내가 고분고분한 성격의 여자였다면 좀 더 삶이 편했을까? 하는 물음이 떠오를 때.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의 진취적이고 당찬 면모를 좋아한다. 그러나 종종 왜 이렇게 여자가 기가 세? 라던가. 여자는 좀 더 나긋나긋한 게 좋지 따위의 말들을 듣다 보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더 좋았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물음이 다가올 때 당당하게 아니, 지금의 나였기에 잘 살았던 거야 라고 확답할 수 없음에 씁쓸한 기분이 된다. 이 책에서도 나와 비슷한 딜레마를 느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 딜레마에 대한 답을 제시해주지는 않았기에 나를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112쪽
김은실 팀장은 여자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회식 자리에 끝까지 남았고, 야근과 출장도 늘 자원했고, 아이를 낳고도 한 달 만에 출근했다. 처음에는 자랑스러웠는데, ... 출산, 육아로 인한 휴가와 휴직도 당연한 것인데 후배들의 권리까지 빼앗은 꼴이 됐다.


 요즘처럼 성차별에 대해 민감한 시기에 읽기에 시의적절한 책이다. 시의적절한 만큼 이 책과 성차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또 나 자신도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기에 글로 남기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그렇지만 다양한 의견을 들어봐야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생각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솔직하게 내 생각을 보태어 글을 써보았다. 그리고 이 글로 끝이 아닌 이 책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남자분들이 이 책을 읽고 느낀 점들을 공유해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선의 비난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다음번에는 작은 독서 토론을 준비해볼까 한다.






29쪽

어머니는 혼자 병원에 가서 김지영 씨의 여동생을 '지웠다'. 아무것도 어머니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었고, 온몸과 마음으로 앓고 있는 어머니 곁에는 위로해 줄 가족이 없었다.


36쪽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41쪽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선생님이 잘 얘기할 테니까 이렇게 오해한 채로 짝 바꾸지 말고, 이번 기회에 둘이 더 친해지면 좋겠는데."

짝꿍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그래야 하는 거다.


63쪽

"그러게 말이야. 암도 고치고, 심장도 이식하는 세상에 생리통 약이 한 알 없다니 이게 무슨 일이라니. 자궁에 약 기운 퍼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아나 봐. 여기가 무슨 불가침 성역이라도 되는 거야?"


68쪽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123쪽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139쪽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144쪽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151쪽

머리만 좀 지끈거려도 쉽게 진통제를 삼키는 사람들이, 점 하나 뺄 때도 꼭 마취 연고를 바라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엄마들에게는 기꺼이 다 아프고, 다 힘들고, 죽을 것 같은 공포도 다 이겨 내라고 한다. 그게 모성애인 것처럼 말한다.


174쪽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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