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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 Mar 16. 2017

자기만의 방의 방을 읽고서

버지니아 울프 - 자기만의 방

책을 덮는 순간 알아차렸다. 그리고 곧장 화가 났고, 부끄러웠고, 안타까웠다. 세상에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여성의 권리에 대해 강력히 피력하는 여성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여성이, 여성이 받는 피해에 대해 낱낱이 묘사하는 여성이 세상에 좋지 못한 인상을 주기 쉽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의식중에 이를 신경 쓰면서도 괜찮았던 이유는 자만이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그래도 더 다양한 기회를 손에 쥘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자만하고 있었다. 더 나아진 세상이라니 얼마나 모순적인가.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면서 이전보다는 더 나은 상태라고 자위하고 있던 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를 언급했다.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버금가는 작품을 쓴다는 것은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럼 지금, 내가 더 나아진 세상이라 여겼던 21세기를 돌이켜보자.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윈이 성공하는 이 시대에 이들만큼 성공한 여성이, 성공할 수 있는 여성이 있는지를 떠올려보자. 단 한 명의 여성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의 여성들도 16세기의 여성들보다 나아졌다고 안도할 수 없다.


처음 책장을 넘기며 버지니아 울프가 과한 분노를 표현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분노로 가득 찬 글을 쓰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일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천 년 동안 무궁무진한 재능이 있음에도 이름 한 글자조차 세상에, 아니 자신의 자식들에게조차 남기지 못하고 떠나간 그녀들을. 그리고 그 이름의 목록 속에는 우리 엄마의 이름이 있음을. 그리고 그 목록의 마지막 줄에 나의 이름 또한 언제든 적힐 수 있음을.


버지니아 울프는 말한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이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겠다. 때로는 사소해 보이기 때문에 더욱 분노하게 된다.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이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없어, 만개하지 못하고 떨어져 버린 많은 꽃봉오리들이 있었다. 언제까지 많은 꽃봉오리들이 유리병에 갇혀 활짝 펼쳐보지 못하고 떨어질 것인가. 내 뒤의 그녀들에게도 이런 유리병을 남겨둘 것인가. 모든 여성이 자기만의 방과 돈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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