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
잡풀을 다 뽑고 푸성귀라도 갈아먹으려고 호미를 들고 밭에 들어가면 조그맣게 피어오르는 이름이 없는 들꽃을 쉬이 만난다. 그 꽃들이 너무 예뻐서 잡풀 뽑기를 포기하고, 그냥 마트에서 사 먹자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러고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때가 되면 피어나는 들꽃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각기 종류대로 한 곳에 모아서 꽃밭을 가꾸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바쁜 일상을 잠시 미뤄두고 딴짓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가 오월이다. 오월이 되면 땅속에서 들꽃들이 고개를 들고일어난다. 들 여기저기에 피어있는 민들레를 비롯하여 이름도 모르는 조그마한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
어린 시절 들 여기저기에서 피어있던 개망초로 소꿉장난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도라지꽃을 좋아하는데 그 단순한 통꽃이 품어내는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좋아하는 꽃을 하나만 고르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다.
최근 몇 년 전 화려함을 마음껏 뽐내는 작약꽃이 너무 좋아져서 5그루를 사서 밭 한쪽에다 꽃을 보리라 하고 심었다.
그런데 한 번도 내게 꽃을 보여주지 않았다. 작약을 심긴 심었는데 가을도 되기 전에 그 잎조차 다 말라버려서 죽었나 보다고 아쉬워하면서 체념하고 있었는데 작년에는 그 앙상한 줄기가 초록 줄기가 되고 어느덧 잎이 나오고, 꽃망울이 맺혀서 살아있음을 잠깐 보였다가 꽃의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흔적만 남기고 간 작약꽃을 보면서 뿌리에 꿈을 담고 버티면서 봄을 기다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또한 언제 피었을지도 모르는 꽃다운 시절의 기억으로 여기에 버티고 살아가고 있다.
4월이 되면 힘든 겨울을 견디어내어서 잠시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전령사들의 예쁜 꽃들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나의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내가 언제 꽃을 찾으며 보고 살았나? 그냥 보이는 꽃을 잠시 감상하고는, 다시 건조한 삶을 여전히 살아내지만, 내밀한 속삭임으로 봄을 기다리며 힘겹게 버텨내는 작약이어도 좋고, 겹 복사꽃이어도 좋은 만개한 그 화려한 봄으로 태어나고 싶다.
올해는 예쁜 꽃 작약의 함박웃음을 보았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꽃이 피면 이렇게 살아오느라 정말 애썼다고. 말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