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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Jul 23. 2021

"내 남자 초반에 꽉 잡는 법"




이 글은 제가 대한민국에 살기 시작했던 초반, 많은 것이 낯설었던 한국의 여러 문화적 차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글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도 그렇고, 한국사회도 그렇고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당시의 분위기와 인식입니다.
그동안 꽤 시간들이 흘렀고 저도 초반보다는 많이 적응되어 가고 있네요.




내 남자 초반에 꽉 잡는 법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모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진행한 연예 프로그램 제목이다.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또는 갓 결혼한 남녀들 사이에 반드시 자기 남자를 초반에 꽉 잡아야 시간이 흐르면서 남자를 나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존재로, 속된 표현으로 자신에게 꼼짝 못 하고  무조건적으로 순종(?)이라기보다 적어도 내 말을 잘 들어주고 내 의견에 잘 따라주는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아니라고 항변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적어도 당시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옳은 말일 가.

여성이 남성을 초반부터 꽉 잡으려고 한다면 이 땅의 많은 남성들이 그렇게 사는 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사랑이 그런 일반적이고 강압적이고 무조건적인 종속관계에 의하여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너무 제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하지만 한국사회에 와서 가장 놀랐던 부분의 하나가 드라마에서 (단지 드라마에서 뿐이라고만 믿고 싶다) 여성들이 남성의 뺨을 찰지게 후려치는 모습에 "오마야, 오마야~"를 연발로 웨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나는 이 제목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늘 아름답고 따뜻하고 행복함의 대명사로 표현되어 왔다. 사랑은 고상하고 신성한 것이라는 고차원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질투도 사랑 표현의 일부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 귀중한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실지 현실에서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다르게 인지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내 남자 초반에 꽉 잡는다"는 의미는 문장 그대로 이해한다면 사이라는 단어로 연결된  두 사람 사이에 한 상대가 다른 상대에게 꽉 잡혀서 질질 끌려 다니는 식(과한 표현 죄송합니다만~)으로 연결된다면 그것은 벌써 사랑이 아니고 지배자와 피 지배자의 관계이다.

사랑이라는 명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답고 따뜻하고 행복한 의미를 저버린 것일 듯하다.

.

교양적 의미에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흥미 본위 주의, 어쩌면 젊은 사람들에게, 또는 사회 전반에 꼭 그렇게 해도 된다는,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의 의미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남자를 초반에 꽉 잡을 수 있는지, 그리고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최고의 방법을 내놓은 사람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는 장면, 그런 프로그램에 나는 박수를 보낼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제목은 '내 남자 초반에 꽉 잡는 법'이라고 되어있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나한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도록 나를 가꾸고, 나의 지적 수준을 높이고 나의 가치를 높이는 등 나를 더 성숙되게 만들어 가는 방법이나 지혜를 나누는 것이라면 박수를 보내면서 더불어 큰 배움을 함께 얻고자 할 것이다. 어쩌면 실지 내용이나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목적은 그러한데.. 제목만 좀 자극적으로 선정했을 수도 있다. 이 점이 더 클지도 모른다.


여자가 자기 남자를 초기에 꽉 잡으려 한다면 남자도 여자를 초반에 꽉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법이 없이 없지 않을까.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자기의 틀 안에 끌어넣으려고 하다 보면 결국 소리가 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매력 때문에 상대의 잘못이 많은 부분 이해되고 융화될 수는 있어도 초반에 꽉 잡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상대의 약점을 잡아내고 그것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누구든 한쪽은, 아니 어쩜 양쪽 모두 진심이 우롱당하고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이것도 탈북민인 우리가 모르는 한국문화의 일종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재미있게 보면 되지 무엇 때문에 시비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내가 다 모르고 있는, 어쩌면 이 사회에 살면서 반드시 이해하면서 공감하고 받아들여야 할 문화가 이런 것 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인정하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당혹스럽다.






언제인가 젊은 남녀 사이의 동거문화를 다룬 드라마도 있었다.

시청률이 높았고 폭발적인 인기를 가져왔다고 한다.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소문난 우리 민족은 봉건적인 윤리도덕이 특별히 강해서 “남녀 7세 부동석”이라는 말이 이제 무색하게 되어버렸다.

물론 지금 이 글에서 윤리를 강조하고 따져보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동거” 

물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 못일 수도 있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느 언론에서 젊은 남녀를 상대로 조사한 적이 있었다. 만약 자기의 여자나 자기의 남자가 혼전 동거 경력이 있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 가고 물으니 70-80%가 이해하지 못한 다고 대답하였다. 당연하다. 


그렇다면 혼전 남녀의 동거를 내용으로 하는 드라마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는지, 아님 언론이 약간은 왜곡해서 보도한 것인지도 나름대로 의심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론의 보도 모양을 보면 마치도 “동거”라는 문화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물론 한국과는 많이 다른 북한문화에 익숙되어 있던 나의 생각이다.) 높은 시청률을 나타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였다.

헷갈린다.

어디까지가 진실이라고 받아들일 부분이고 어디까지가 사회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거부해야 할 부분인지 정말로 분간하기가 어렵다.

언론의 말이라고 무조건 옳다고 믿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아직은 한국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낯설기 때문에 언론을 통하여 옳고 바른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누구한테서 배울까,

어디에 가면 진실되고 참된 것을 알 수 있을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던 부모님이 그립다.





이 글을 쓰던 때로 부터 참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니 시간이라기보다 세월이 흘렀다는 표현이 더 적당한것 같네요.

한국사회는 물론 저도 당시와는 생각과 관점들이 변하고 있지만 (저도 어쩜 젖어들고 물들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수도요. ㅎ)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이 저속하고 하찮게 평가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배경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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