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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Jun 29. 2021

딸에게 물려준 어머니의 가치관



“가난할지라도 비굴하지 말라”는 우리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저한 테는 ‘좌우명’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한때는 좌우명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이렇게 대답하군 했죠.     

앞에서도 몇 번 언급되었지만 저의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이셨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귀하다고 인식되는 직업은 아닙니다. 그러니 돈을 잘 번다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죠. 생활이 그렇게 윤택하거나 우아하게 보일 정도는 전혀 아닙니다. 어릴 때는 이러한 상황들에 위축될 법도 한데  어머니의 지속적인 가르침  “가난할지라도 비굴하지 말라 ‘는 말씀 덕분에 자존심 하나로 버티어 왔고 지금도 잘 버티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쟁쟁한 의료인들 속에서도 병원 보일러공 아버지가 전혀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웠던 이유도 어쩌면 엄마의  가르침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따뜻한 추억 몇 가지는 다들 있겠지요. 추운 겨울 학교 마치고 덜덜 떨며 집에 들어가면 이불을 펴놓았던 따뜻한 아랫목으로 이끄시던 손길, 살포시 손을 넣으면 그 속에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밥과 국이 몸과 마음을 녹여줍니다.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학교 문 앞에 찾아오신 어머니를 먼발치에서 보고 빗물 튀기면서 달려가 안길 때는 세상 다 가진 기분이죠,  

그래서 오늘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저의 어머니는 참 현명하신 분이셨습니다. 근사한 살림살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혜와 총명으로 문제를 헤쳐나가셨던 것 같습니다. 비굴하지 말라는 꿋꿋한 심지를 지니셨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함부로 대하거나 말씀을 함부로 하지 않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마음에 드는 사람도, 안 드는 사람도 있고, 대단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하찮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배울 점 한 가지는 있으니 꼭 그 부분을 먼저 찾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누구나 어릴 때의 추억 중에는 공부를 잘하라는 잔소리를 듣거나  어른들의 판단으로 그릇된 행동을 했을 때 꿀밤 하나 정도는 받았던 기억이 있을 듯합니다만, 저는 그 흔한 잔소리 한번 들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머니는 잔소리로 가르침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방법으로 가르침을 주셨거든요.


친구와 싸우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어머니는 용서하고 잊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행위를 어떻게 용서하냐고 했더니 용서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아주 먼 후날,  그 친구가 잠깐이라도 너를 생각할 때 괜찮은 사람으로 추억되게 하려면 지금 의연하게 용서하는 것이고 그것이 그 친구의 마음에 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간직하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지금 용서하지 않고 '생떼'부린다면 훗날까지도 그 친구의 마음속의 저와의 관계를 정리하길 잘했다는 마음일 것이라고요. 그렇게 그 친구를 용서했었는데 세월이 흘러도 경솔했다는 생각이 안 들고 두고두고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머니의 사고는 늘 긍정적이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과 행동은 제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죠.

초등학교 시절 과제 제출이 있었습니다. 어떤 그림을 그려가는 것이었는데, 보통은 부모님의 조언을 받으면서 만들어가죠. 혼자서 잘할 것 같은 욕심에 어머니가 들어오시기 전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까지 했는데. 정말 엉망징창으로 망쳤습니다. 누가 봐도 함부로 한 결과입니다. 엄마에게 꾸지람들을 것 같은 두려움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습니다.      


드디어 퇴근 후 제가 만들어놓은 과제물을 본 어머니께서 “하, 하, 하” 하고 웃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죠. “네가 혼자 그린 거구나, 정말 새로운 느낌인데?”

그러시고는 어떻게 그렸는지 물으셨고 잘 그리고 싶었는데 제대로 안된 거라는 제 대답을 들으시고는 “아하, 그렇구나, 그 방법으로 했더니 이렇게 된 거구나, 나라면 다른 방법으로 했을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지 않아?"”이러시면서 엄마의 생각을 말씀하시고 저를 유도하십니다.      


엄마의 방법이 정말 궁금해진 저는 그렇게 저는 자존심 상하지 않으면서 엄마의 말씀대로 수정해보게 되고 결국 좀 더 근사한 결과물이 만들어집니다.   엄마의 방법은 늘 이러했습니다. 스스로 바꿔보도록 이끌어주고 밀어주고 격려해주셔습니다.  


모든 과정에서 어머니는 망쳐놓은 결과에 대한 꾸지람보다 다른 방법으로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수정하고 싶은 결심과 함께 상황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좀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유도하셨습니다.


엄마가 했을 것 같은 방법으로, 또는 예전에 엄마가 행하셨던 방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어린 시절, 엄마의 방법으로 말하고 행동했을 때 어른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런 과정, 이런 습관은 어머니의 말씀을 잔소리가 아닌 가르침이라고 인지하게 되고 성장하면서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들과 부딪칠 때 엄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중에 “산 좋고, 물 좋고, 앉을자리 까지 좋은 곳을 없다”라고 하신 말씀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늘 그러셨습니다. 모든 것에 욕심내지 말라고요.


원하는 것들 가운데서 한 가지라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만족하고,

두 가지 마음에 들면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세 가지 네 가지는 바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때로는 도전을 포기하는 경우로도 이어지게 되어 가끔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만, 억지로 소유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된 지금 저도 아들에게 가능한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하고 가능한 타인을 배려하도록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이 방법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야비하고 욕심 많은 인간이라는 손가락질 정도는 받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단 한 가지라도 좋은 부분이 있다면 만족하라고 하신 것과 일치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주변에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저와 어울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제가 늘 얘기하군 합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주변 분들과의 이런 끈끈한 어울림이 없었더라면 저의 한국사회의 정착이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욕심을 버리고 조금은 내려놓는 습관을 간직한 덕분에 늘 상황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에도 습관 되었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을 얻게 되고 그들로부터의 두터운 신뢰관계를 얻게 됩니다. 외로울 때 위로받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정보를 얻고, 힘들 때 도움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제가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이끌어주신 어머니께 늘 감사합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자존감을 지키고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가치를 알게 해 주신 어머니께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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