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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Aug 30. 2021

북한에도 '돈 봉투' 던지는 부모가 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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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 : 재일조선인 총 연합회

정의
1955년 5월 25일에 결성된 친북 성향의 재일동포 단체.

개설
조총련·총련·조선총련(조련)으로 약칭한다. 조총련은 민단에 맞서 재일동포의 거주, 직업, 재산과 언론, 출판 등 권익 옹호와 자유를 옹호한다고 명시하는 자치단체임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는 친북적 성향의 조직이다. 따라서 북한의 전위대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조총련의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는 재일동포에게는 누구나 가입이 개방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재일본 조선인 총 연합회 [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남자 친구의 부모님은 조총련 계열의 재일교포이시다.
청년시절에 북한으로 귀국하셨고 이후 결혼하셨으니 당시 남자 친구는 북한 출생이지만 재일교포자녀인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연이지만 남자 친구의 아버지대까지는 3대 독자라고 하셨다. 물론 남자 친구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었으니 독자는 아니었지만 3대 독자의 맏아들이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집안에서 여자보다 남자를 귀히 여기던 시기라 그 가문에서 내 남자 친구는 매우 큰 관심의 대상이었고 귀한 자손이었다. 

당연히 일본에 계시는 할머니부터 온 가족이 남자 친구와 결혼할 여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리라.



당시 북한에서 재일교포 집안과의 연애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우선 재일교포는 북한 사회에서 주류가 될 수는 없었다. 당에 충실하고 맡은 바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하면 당연히 국가에서 인정한다고는 하지만 암묵적으로 재일교포들에 대해서는 기관의 최고 자리를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까지 올려 보낼 만큼 의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인식을 북한 사회가 (정확히는 북한 정권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성분이 아주 좋은 사람, 출세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재일교포들과 혼담을 잘하지 않는다. 재일교포들도 그런 분위기를 아는지 자기 들키리 혼담을 성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일교포는 북한 사회에서 일반 사람들보다 생활수준의 격차가 높다. 한마디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과 연결되어 있으니 북한사회의 일반 계층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물건들(패션, 생활용품, 식료품, 간식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북한 사람들과는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방문단으로 북한을 방문하거나 친인척의 자격으로 오는 개별 방문이라고 해도 한 번씩 오갈 때 가지고 오는 물건들은 우리가 보기에도 대단했다. 그러다 보니 재일교포 가족들 자체가 북한의 일반주민들보다는 자기들끼리 어울리고 생활수준이나 습관 같은 것도 비슷하다 보니 자기들끼리 혼담이 오고 가군 하기도 했다. 거기에 생활수준이 북한 사람들과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돈이 많은 재일교포들끼리 가정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 친구와 나의 연애가 시작되었고 결국 남자 친구의 집안에서도 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당시 북한의 분위기로 볼 때 저와 같은 집안의 여식을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건 재일교포 집안에서 환영하면서 허락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 그들은 그들만의 환경과 습관과 기준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언급되는 적은 없지만 그 기준의 가장 중심에는 권력보다 중요한 것이 "돈, 재산"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물며 우리가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도 아닌 단순한 연애의 개념이었지만 남자 친구의 부모들에게는 이 마저도 꽤나 받아 들 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사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앞부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에서 남자 친구가 적극적으로 나와서 어쩌다 보니 사귀는 상황에 까지 왔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은 남자 친구의 집안이 재산이 많은 집안이라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사랑으로 연애를 한다고 항변하더라고 타인들은 "돈 때문에~`"이라고 조롱할 것 같았다. 돈이 좋기는 하지만, 당시의 북한의 분위기에서는 돈에 집착하면 낮은 수준의 인격 소유자로 간주되고 있었다. 물론 이는 표면적인 표현이고 마음속으로는 돈 많아서 좋겠다는 부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나는 타인들로부터 돈이 아닌, 고상하고 신성한 사랑이라고 항변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다른 남자 사람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이지만 당시 남자 친구의 부모들은 아들을 설득하는데 총력을 집중하였다. 남자 친구의 부모님들이 24세의 나이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남자 친구가 바로 결혼을 한다고 할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좀 사귀다가 말겠지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남자 친구는 진짜 따뜻하고 끈끈한 연인관계가 되어있었다. 물론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 가게 되었다.


상황은 이러하다.

나한테는 언니 한분 있다. 고등학교 교사이고 나와 같은 학년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가 졸업시킨 학생들과 나는 서로 아는 사이이다. 담임선생님께 인사하러 제자들이 많이 찾아오다 보니 나와도 허물없었고 편안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는데.. 어느 날 그 제자들 중 한 명이 언니한테 저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남자 친구가 이를 알게 되었고 아직까지는 어리다고 생각해서 아무 말 않고 있던 남자 친구가 갑자기 조바심 나서 우리 부모님께 정식으로 결혼 허락받으려고 머리를 숙였다. 그동안 딸의 남자 친구를 오래도록 지켜봐 오셨던 우리 부모님은 남자 친구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나이도 어리니 아직 결혼 이야기는 좀 이른 것 같다, 그리고 당신 딸이 그 집안에 어울릴만한 며느리감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계셨으니 적당히 타이르셨다. 며칠을 계속 우리 집에 와서 아버지 어머니를 설득하길래 집에 가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오면 생각해 보겠다고까지 말씀하게 되었다.


친구들 속에서는 이런 상황들이 아름아름 회자되고 있었고 결국 남자 친구의 부모님들도 알게 되었다. 단순한 연애겠지 하고 내심 지켜보고 계시던 남자 친구의 부모님들은 결국 남자 친구와 아주 격하게 충돌하셨다고 한다. 당시 우리 학급의 남사친들에 의하면 남자 친구와 아버님이 서로 흉기까지 들고 아파트가 떠나갈 듯이 싸웠다고 하니 전해 듣는 내 마음도 좋지 않았다. 연애는 해도 결혼까지는 무리라는 생각은 나도 사실하고 있었다. 짝이 기울어도 너무 기운다는 느낌은 나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사자인 나는 아직까지 결혼 생각 없는데, 자기 들끼리 무슨 일이냐고 황당했지만 나는 남자 친구의 편이었다. 이 친구와 당장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헤어지기 싫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다. 


당장 결혼한다는 것도 아닌데..우리 연애가 이렇게 큰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오래전부터 우리 연애를 지켜보고 응원해주던 친구들은 아예 두 사람이 동거하라고 부추겼다. 한국처럼 자유롭게 동거할 수 있는 공간을 편하게 구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니 친구들이 말하는 동거는 하루밤이라도 같이 보내라. 부모님이 찾아와도 못 들어가게 우리가 문을 지키고 있겠다고 할 만큼 우리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였다.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마음이 번거롭고 불편하기는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을 듯.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했더니 우리 부모님께서 매우 침울한 표정으로 계셨다.

그날 낮에 남자 친구의 부모님들이 우리 집에 다녀가셨다고 한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 계속~~)


상단화면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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