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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Apr 06. 2021

나의 첫 외국계 회사 - 다단계'네트워크'

'네트워크'라는 외래어의 매력에 빠지다



무슨 일이든 해야 했습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대한민국으로 왔습니다. 대한민국은 뭐든 내가 원하는 만큼 노력만 한다면 모두 내 것이 된다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으로 골똘했던 정착 초기였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꼭 성공해야지, 말도 같고 문화도 같은데 하물며 외국에서 숨어 다니고 쫓겨다닐 때만큼 힘들기야 할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당시까지만 해도 돈이 많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물론 성공에서 '돈'은 매우 중요하지만 꼭 '돈"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답니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롭게 시작한다는 설렘도 있었고 멋지게 성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미래에 대한 야무진 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꿈이 야무지다고 실현까지 야무지게 완성되는 건 아니겠지요.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과연 무엇일까 매일같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내과, 소아과 의사로 재직하던 중 탈북을 했지만 사실 저는 한국 정착을 시작한 초시기에 반드시 의료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사실입니다.

전혀 다른 곳에 왔으니 전혀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중고등학교 때 하고 싶었던, 진짜 꿈이었던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은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 했습니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저는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의료인이었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한국사람들은 일반적인 지식수준이 높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세상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한국에 와서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한 자신의 정보력과 지식수준에 위축되었거든요.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면 비웃지 않을까 생각되어 대학 졸업했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기로 생각했던것이지요. ㅎㅎ


사실 정착 초기에는 담당 보안관이나 복지관에서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의무는 아니지만 일자리 필요한 사람과, 일군이 필요한 곳을 서로 연결시켜주시기도 하죠.

저도 누구든 나에게 직업을 알선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구요. 언제인가 주변 지인께서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 일자리가 있다고 일하지 않겠냐고 물어왔습니다. 3교대로 일하는데 급여는 한 달에 80만 원이라고 합니다.  


괜찮을 것 같아서 담당 보안관분께 이런 직업이 어떻겠냐고 물었죠. 잘할 수 있겠냐고 하면서 웃으시더라고요. 

3교대하려면, 그리고 톨게이트 작업장의 특성상 운전할 수 있어야 좋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한국 온 지 한 달 겨우 되는 사람이 운전할 수 없죠. 포기했습니다. 


담당 보안관님께 일자리 좀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저한테 일자리 소개하기가 조심스럽고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왜? 하는 의아함이 들었으나 나중에는 조금씩 이해되기는 했답니다. ㅎㅎ


돈을 벌어야 했지만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저는 막연하게 이러저러한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받고 나서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교회에서 만났던 어떤 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 요즘 뭐하세요?'

" 그냥 있는데요. 특별히 하는 일은 없습니다."

" 답답하지 않으세요?"

" 너무 답답한데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었어요"

" 저랑 좀 어디 함께 가볼까요? 요즘의 한국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사람 구경 좀 하게요. 그러노라면 뭘 할지 생각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바람도 쐴 겸요"


아주 신나서 그분과 함께 근사한 건물로 갔습니다. 큰 강당 같은 공간에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둥근 의자에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정말 열정적으로 무슨 토의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 다른 몇 개의 방에서는 강사의 열정적인 강의가 진행되는듯했고, 한 강의씩 끝나면 강의를 듣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는 모습이 강의를 통하여 깊은 감명을 받은 듯 느껴졌습니다.


뭔가 그곳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고 약동하는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무력하게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는 저한테는 삶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어떻게 하면 강의를 들을 수 있냐고 물었고 즉시 강의실로 안내되었습니다.

저한테는 아주 생소한 강의 내용이었고 한번도 접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경제생활의 방식이었습니다. 

회원 가입하고 일상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싸게 구매할 수 있고 좋은 제품을 지인께 소개하면 그 지인도 좋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고 소개비도 나의 통장으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너무 매력적인 방식 아닌가요?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다단계인 거죠. 하. 하. 하.


저는 단번에 폭 빠져 버렸습니다. 돈을 버는 구조는 매우 쉽고 ,간단했고, 신기했습니다. 돈을 벌면서 공부할 시간이 필요했던 나에게는 더욱더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도 '네트워크'라는 단어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외래어가 난무하는 한국사회에 와서 외국식의 단어들에 익숙하지 않아 소외 감도 있었는데 드디어 네트워크라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외국계회사"에 입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참 행운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누구나 이렇게 쉽게 외국계 회사에 취직할 수 있을 것도 아닐 텐데.. 저는 한국에 와서 한 달 만에 이런 매력적인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니.. 꿈만 같았죠.

이렇게 괜찮은 회사들이 있는데 왜 한국에는 실업자가 많은 거지?

어떻게 나한테 이런 행운이 차례진 거지?. 나 진짜 복 받은 사람인가 봐..

여기서 돈 벌어서 꼭 성공해야지.~~ ㅎㅎㅎ






다단계~~ 쉽지 않죠?

다단계는 특성상 인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주민등록증을 손에 잡은 지 한 달이 안 되는 제가 감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 허, 참,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순수했고, 어리석고, 가소롭기도 했던 것 같았어요.


뭐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정말 열심히 물건 선전하면서 팔았습니다. 우선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들부터 '포섭'했습니다. 북한에서 온 제 말을 믿고 물건을 구매해주신 그분들도 정말 순수하셨죠. 돌이켜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도 많고 감사한 마음도 큽니다. 담당 보안관님께도, 당시 통일부산하 새터민정착교육기관의 공무원이셨던  하나원 원장님께도 물건을 소개하는 등 정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4개월만에 상당한 등급까지 올라갔었고 당시, 북한에서 온, 생면부지의 남한사회에 뚝 떨어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꽤 괜찮은 기록으로 무대에서 강의도 참 여러 번 했습니다. 어이구... 참.
사람들에게 물건을 어떻게 소개했는지, 어떤 식으로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었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사업에 임하고 있는지 두루 이런 내용으로 무대에 섰던 것 같습니다. ㅎ

딱!! 요기까지입니다. 4개월 동안 열심히 했고 제가 가지고 있던 정착금의 전액을 투자했지만 내가 돌려받았던 금액은 고작 몇십만 원이었고 한국사회에 인맥이 없었던 저는, 제 능력의 한계를 실감하면서 결국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날리고 이 일에서 손 털게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정착을 시작한 지 5개월 사이에 모든 상황은 정리되었고 저는 깊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결코 한국사회에서의 정착과정이 녹록지 않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다시 고민하고 설계하기 시작합니다.






새터민들이 한국에 오면 정착 기관에서 많은 여러 가지 교육을 합니다. 그 과정에 다단계에 대해서도 물론 주의할 것에 대해 교육받죠.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사실 잘 배워서 정착을 성공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컸기 때문에 교육에 진심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실지 현실에 부딪치면서 터득하기 전에는 마음속 깊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구요.


북한에서 외래어에 익숙되지 않다 보니 '네트워크'라는 지극히 평범한 단어에 깊은 매력을 느끼면서 외국계 회사라고 생각했던, 정말 순수했던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다단계, 네트워크 회사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죠.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로 평가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한국사회에 아무러한 인맥도 없었던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때의 상황에 대해 속상하지 않습니다. 전 재산을 다 잃었던 그 시간들이 후회되지도 않습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오늘 현재까지 요행을 바라지 않고 늘 최선을 다하는 삶의 방식을  잘 가지고 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생산적이고도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지만 피타게 노력하는 과정속에 기쁨도 있고, 보람도 있고, 진짜 미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죠.


다단계로 수입을 올리면서 다른 시간에는 어릴 때 부터의 꿈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현재 상태에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했고 그것이 바로 다시 의료인으로서의 길을 찾아가는 거였죠. 


대한민국에서 다시 의료인으로 살아야 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 "대한민국 한의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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